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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 직장내괴롭힘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gettyimagesbank



고 오요안나 MBC 보도국 기상캐스터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지난해 9월 숨졌다. 고인은 유서에 “나를 설득시켜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도 싫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사랑만 할 수 바보취급 없는 게 싫다”고 썼다. MBC '공채'로 입사해 숙직실에서 잠을 청하며 일했지만 '프리랜서' 신분의 벽을 넘지 못했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MBC 사람이 아니다'라며 외면 당한 설움이 담겼다. 미디어오늘은 고 오요안나 캐스터의 1주기 즈음해 보호 사각지대에 밀려난 언론계 비정규직 현장을 취재해 '내가 오요안나다'라는 이름으로 연재에 나선다. - 편집자주
대학졸업후 취업
허이슬(33세·가명) 씨는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의 프리랜서 에디터였다. 기자를 꿈꾸며 공부해온 그는 지난해 3월, 머니투데이 지주사 ㈜엠티홀딩스(현 브릴리언트코리아)의 '에디터 신입·경력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기사 작성 시험과 한국어능력시험 등 성적 제출, 면접을 거쳐 채용됐다. 입사한 뒤에는 서울 청계천로 머니 복리 투데이 사옥 길 건너 '본부' 사무실로 출근하며 머니투데이 중기&창업팀 에디터 명함을 가지고, 머니투데이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며 일했다.
허씨는 6개월 간 자신이 “사무보조였고, 에디터였고, 영업사원이었고, 팀장의 비서”로 일한 근로자였다고 돌아봤다. 그가 입사하면서 받은 '머니투데이 중기&창업팀 관리 업무 매뉴얼' 엑셀 파일엔 온종일 할 부산문현금융단지 일이 빼곡히 적혔다. ①출근 후 업무 시작 전 오늘 할 일 메일 보고 ②퇴근 전 업무일지 및 영업일지, 파일 팀장 메일 전송 ③외부 및 영업활동 보고와 근태 보고 ④매주 카톡과 대면으로 영업활동 보고 제하에 업무 리스트가 담긴 파일이다.



▲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는 허이슬 중고차 추천 (가명) 씨에게 머니투데이 중기&창업팀 명함도 파줬다. 사진=허씨 제공





▲허씨가 입사 뒤 지켜야 했던 머ㅣ투데이 중기&창업팀 관리 업무 매뉴얼 중 일부 내용 갈무리. 허씨 제공



특히 '커뮤니케이션' 란엔 “상부 톡이나 메일을 바로바로 회신”하라고 강조된 대목도 있었다. 허씨는 “9시30분까지 출근해 상시 지시를 받았다. 본사에서 신문을 가져오고, 커피 심부름과 설거지, 청소와 택배 수령, 비품 정리 등 작은 살림까지 도맡았다”고 했다.

직속 상관인 A팀장은 거듭해 허씨에게 “프리랜서지만 비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A팀장은 허씨와 업무상 나눈 카카오톡 대화에서 수 차례 허씨에게 '비서'라는 표현을 썼다. 허씨가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급여를 지급받지 못한 재택일에도 A팀장은 시간대별 세 차례의 이메일 보고와 출퇴근 업무일지 보고, 연락 회신 등을 지시했다.



▲A 팀장이 재택일에 시간대 별로 수행할 업무를 지시하거나, 프리랜서에겐 시킬 수 없는 비서와 관리 업무 등을 강조했다. 허씨가 머니투데이 중기&차업팀 에디터로 일하는 동안 직속상관 A팀장에게 받은 일상적인 업무 카톡 일부 갈무리.



회사가 허씨에게 '에디터이자 기자'라며 맡긴 일은 '유가 보도상품' 즉, 기사형 광고 영업이었다. 중소기업에 대한 인터뷰 등 홍보성 기사를 송출하고, 그 대가로 머니투데이 유료멤버십과 파트너십 가입을 명목으로 수익을 올리는 일이다. 기사는 머니투데이 송고 시스템을 거쳐 '허이슬 인턴기자' 바이라인을 달고 정식 송출됐다. 기사에 '광고'나 '애드버토리얼' 표기는 달리지 않았다. 허씨가 업체에 보내는 계약서와 공문 직인란엔 '머니투데이 강호병 대표'가 적혔다.

하지만 허씨의 소속은 머니투데이가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돌아보면 입사 계약 때부터 이상했다”고 허씨는 말한다. 채용공고는 '정규직·계약직'이었는데, 회사는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 용역계약서' 즉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허씨가 받았던 계약서에는 회사 이름과 주소, 대표를 적어야 할 서명란의 '갑' 부분이 공란이었다. 허씨는 “이렇게 큰 회사에서 계약으로 장난치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 용역계약서에 서명했다. 팀장은 계약서만 프리랜서라고 했다”고 돌아봤다. 기본급도 있었다. 주4일 출근할 땐 200만 원, 주2일이면 기본급 100만원, 그리고 '영업' 수수료를 인센티브로 주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A팀장은 카카오톡과 메시지와 이메일로 “1년 1억 매출 성과 시 정기자 (채용) 상신 조건”이라 강조했다.



▲직인란 '갑' 부분이 공란이었던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 용역계약서. 허씨 제공



영업 업무를 하며 참아내야 할 일도 많았다. 허씨는 “A팀장은 업체 사장 영업을 하러 나갈 때마다 '남자 사장들 앞에서는 화장 예쁘게 하고, 눈을 깜빡이라'고 수시로 말하곤 했다”며 “명백한 성희롱이고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고 했다. A팀장은 허씨에게 여러 날에 걸쳐 “눈 깜빡~” “자신감 있게. 그리고 깜빡. 아니면 말구니 그 자리에서”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아가 허씨는 “(A팀장이) 'CCTV 성능 좋은 것 알지'라고 말하곤 했다”며 CCTV로 감시를 당했다고도 토로했다. A팀장에게 처우 개선을 요구했던 허씨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6개월 뒤 퇴사하게 됐다.

머니투데이 홈페이지에 '인턴 기자' 이름으로 기사를 내보내던 허씨는 퇴사한 뒤에야 자신이 '5인 미만 사업장' 소속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말한다. 허씨가 지난 3월 그간 인정 받지 못한 재택일 근무분과 연차수당, 주휴수당 등 800여 만 원 임금 체불과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을 고용노동부에 진정한 뒤 일이다.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는 법인 전환을 하지 않은 개인사업체였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이 회사가 5인 미만 사업장이라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성희롱도 불인정했다.
허씨는 이에 근로복지공단에 '피보험자격 확인 청구'에 나섰다. 4대보험에 가입해 간접적으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번엔 '용역계약서'가 벽이 됐다. 기본급 지급내역과 업무 대화기록과 매뉴얼, 지휘감독 기록들을 제출했지만, 지난 6월, '용역계약서' 작성을 근거로 열흘 만에 근로자성이 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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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는 “5인 미만 사업장이란 이유로 내가 느낀 수치심과 모멸감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돼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머니투데이라는 큰 언론사의 이름을 이용해 언론홍보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5인 미만 사업장이 되어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언론사가 근로자로 일을 시키면서 계약을 멋대로 정해, 피해자들은 '노동자 아님'이라는 산부터 넘어야 한다는 게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허씨가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한 A팀장은 23일 통화에서 “(허씨는) 근로자가 아니고 영업만 했던 친구”라며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진정도 다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 측은 A팀장을 통해 급여 입금 시 통장에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라 기재돼 있고, 계약서 첫 장 '갑' 부분에도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라 적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부에서 충분히 조사 받고 법적 문제 없음을 통지받았다”고도 했다. 머니투데이와는 관계사라고 했다.
또한 “CCTV가 있으니 열심히 하라 말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보고서 지적한 적은 없다”라고 본지에 전했다. 또한 “엠티홀딩스로 공고하지 않았고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로 공고를 냈다”고 밝혔다. 박씨의 채용사이트 '사람인' 계정에는 '엠티홀딩스' 지원 기록이 남아있다. 머니투데이 측은 24일 미디어오늘에 A 팀장이 전한 것 외 별도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허씨 사건을 담당하는 하은성 노무사(샛별 노무사사무소)는 “회사는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근로자가 노동청에 제출한 자료만 보더라도 허씨가 영업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손쉽게 알 수 있다”는 반박이다. 이어 “계약서나 급여지급 명의와 같은 형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가 독립된 사업체가 맞는지를 실질적인 요소로 판단해야 하는데 노동청의 판단은 형식적 판단에 그쳤다”며 “노동자가 대리인 없이 진정을 제기하면 근로감독관이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회사 말만 믿고 회사 편을 든 것”이라 지적했다.
허씨는 이 일을 겪으며 기자라는 꿈을 접었다. 그는 고(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 뉴스를 접하고도 놀라지 않았다고 했다. “언론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충격적인 사건인데도 '저런 회사 많지'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나도, 오 캐스터도 둘 다 꿈이 있었다. 나는 특채로 기자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열악한 처우를 참아야 했고, 이 분도 MBC 캐스터로 자리잡기 위해 월 160만 원대 임금과 괴롭힘을 견뎌야 했다. 언론사들은 이번에도 '이 일 하고 싶은 사람 많다, 너 아니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