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대전 서구의 한 우체국에서 시민들이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 수기로 주소를 작성하고 있다. 이다온 기자


"멀리 있는 친척에게 명절 선물을 보내려 했지만 온라인 접수가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직접 우체국을 찾았습니다. 주소를 종이에 적는 것도 오랜만이라 시간이 꽤 걸렸네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화재로 나흘째 정부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행정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29일 오후 대전 서구의 한 우체국.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면으로 우편을 붙히려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일부 우편 서비스는 재개됐지만, 착불소포, 신선식품, 미국행 EMS(비서류) 등은 여전히 접수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우체국 구 중도상환 방법 내에 설치된 무인우편접수기에는 '무인우편접수기를 통한 우편물 접수가 불가한 상황'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29일 대전 서구의 한 우체국 구내에 설치된 무인우편접수기에는 '무인우편접수기를 통한 우편물 접수가 불가한 상황'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다온 기자
법인사업자

이날 우체국을 찾은 김모(40) 씨는 "해외 거래처에 급하게 서류를 보내야 하는데 접수가 늦어져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추석 택배 물량까지 겹치면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행정 마비는 조달 분야로도 번졌다. 나라장터는 간헐적으로만 접속되고, 대금 지급 등 일부 아파트 매매 중개수수료 기능만 제한적으로 운영 중이다. 대전의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추석 전에 공사 대금을 청구해야 하는데 시스템이 안 돌아가 걱정"이라며 "자금난은 물론 근로자 급여 지급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9일 대전 지역의 한 은행 출입문에 '일부 본인확인 서비스 제한' 안 종사자 내문이 붙어 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화재로 정부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 등 본인확인 절차가 지연돼 은행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이다온 기자


은행 현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민원24 시스템이 복구되지 않아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이 불가능했고, 이로 인해 실물 주민등 주부대출쉬운곳 록증만 가진 고객은 거래 자체가 막혔다. 이날 은행을 방문한 정모(27) 씨는 "주민등록증만 가지고 은행에 갔다가 거래가 안 된다고 해서 여권을 가지러 집에 돌아가는 중"이라며 불편을 토로했다.
현재는 민원24 홈페이지와 유선전화(1382)를 통한 신원 확인은 가능해졌지만 모바일 비대면 금융 서비스는 여전히 중단된 상태다. 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대출이나 계좌 개설 시 공공 마이데이터를 불러와야 하는데, 행정안전부 서버가 멈춰 있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전민동행정복지센터 입구에 '사용 불가' 안내문이 붙어져 있는 무인발급기 옆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최다인 기자


행정복지센터들도 비상이 걸렸다.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은 아침 일찍부터 시스템 점검에 나섰고, 무인발급기와 창구에는 '문서 발급 지연' 안내문이 붙었다. 주민등록증 발급, 임대차 신고 등 핵심 민원 업무도 상당 부분 차질을 빚었다. 민원인 김모(33) 씨는 "분실한 주민등록증 재발급 때문에 왔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서 다음에 다시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서구 일대 행정복지센터들은 전산망이 연결되지 않아 가족관계 신고나 등기우편 발송을 수기로 처리하고 있었다. 한 공무원은 "등기번호 바코드 인식이 안 돼 번호를 손으로 입력하고 있다"며 "처리 속도는 평소 절반 수준이라 민원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충북의 한 종합병원 장례식장에선 유족들이 화장 예약을 위해 전화를 돌리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화장장 예약 시스템인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접속이 불가해졌기 때문이다.
온라인 예약이 막히자 장례식장 직원과 유족들은 수기로 빈 화장장 현황을 확인하고 전화로 예약 후 사망진단서 등을 팩스로 보내는 방식으로 예약을 확정하고 있었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전산 처리 시에는 간단하던 절차가 전화와 팩스로 문서를 주고받는 등 수기로 진행되고 있다"며 "업무 속도도 크게 느려졌고 유족들도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역시 질병관리청 전산망이 닫히면서 수기로 임시 처리하는 등 혼란을 빚고 있다. 대전의 한 병원 관계자는 "온열환자 같은 긴급 환자 현황은 원래 질병관리본부 시스템에 바로바로 입력해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못 하고 있다"며 "수기로 적어놓긴 하지만, 업무 효율성과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한편, 이번 사태는 지난 26일 오후 8시 20분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 5층에서 발생한 화재로부터 비롯됐다. 리튬이온배터리 384개가 불에 타며 정부 주요 전자행정 시스템이 중단되거나 마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