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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서남동 중심상업지 먹자골목 일대. 광주사람들에게는 서남동 보다는 '구시청'이 더 익숙하다. 도미니크 페로의 노란 폴리 조형물이 서 있는 곳 언저리다. 폴리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7층 건물을 만난다. '육층집'과 '아트 스페이스 흥학관'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 건물부터 잇댄 3~4개 건물 터에 100여 년 전 2층 목조건물이 있었다. 흥학관(興學館)이었다. 흥학관은 1920~30년대 일제 항쟁기 광주의 진보적 청년운동과 항일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자,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전략본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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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구. 광주동구 제공


#광주 부자와 진보적 동생의 성향 결합
광주의 거부 최명구(1860~1924)는 회갑을 앞두고 거금 1만원을 희사했 다. 청년들이 운동도 하고 모여 공부할 수 있는 다목적 문화공간을 염두에 핸드폰연체자 두었다. 형의 취지에 따라 동생 최종윤이 나서 2층 목조 건축물을 건립했다.
낙성식은 1921년 4월2일 열렸다. 3일에는 회갑연을 기념한 호남 정구대회도 개최했다. '매일신보' 1921년 4월15일자에 기사가 실릴 정도였으니 성대한 낙성식이었던 모양이다. 기사에 정구대회 장소가 흥학관 운동장으로 돼 있어 그 규모 또한 짐작할 만 하다. 행복주택기금 흥학관 운영은 셋째 아들 최종수가 맡았다.

최명구는 광주 행정중심지인 광산동·남구·광산구 일대의 대지주였다. 동생 종윤은 1920년 광주청년회를 조직하고 동아일보 광주지국에서 총무 겸 기자로 활동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아들 종수는 광주공립보통학교(현 광주서석초등학교)의 동창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최종윤과 최종수의 사 환승론자격 회적 성향이 결합돼 청년 수양관 성격의 흥학관이 선보인 셈이다.




1929년 9월 10일 조선청년총동맹전남연맹이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흥학관을 배경으로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광주전남독립운동사적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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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학관은 온돌형 사무실, 체육관, 외부 마당으로 구성됐다. 건축물은 200평 정도였지만, 전체 부지는 800여 평으로 알려져 있다. 체육공간은 유도·권투 교습과 강연장으로 쓰였다. 송진우, 안재홍, 방정환 같은 저명 인사들이 강사로 초청됐다. 온돌형 사무공간에는 광주청년회, 조선노동공제회 지부, 전라노동동맹, 신간회 광주지회, 광주소년동맹 등 진보적 단체 10곳이 입주했다.
온돌형이다 보니 숙식도 가능했을 법 하다. 광주여자청년회는 여성 야학을, 노동공제회 광주지회는 노동야학을 운영했다. 조선어·일본어·산술을 가르쳤다. 운동장은 늘 활기찼다. 정구대회가 열리는가 하면 각종 스포츠대회에서 우승한 팀들이 몰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소설가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 작품에 흥학관이 묘사돼 있다. '양만석은 한참 동안 흥학관 앞에 서서 목조 2층 건물을 쳐다보았다. 중앙에 위치한 삼각조각 지붕 아래 '興學館'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 양쪽에는 광주청년회, 노동공제회 광주지회, 광주청년학원 등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학생운동과 손잡은 민중
흥학관은 1980~90년대 광주YMCA를 연상케 한다. 광주 Y는 사무실과 체육관이 공존했다. 체육관에서는 평소 농구대회 등이 열렸지만 시절이 수상하면 곧장 시국대회장으로 활용됐다. 민중 극단의 마당극이 오르고, 재야인사의 강연회, 시국농성도 벌어졌다. 2층 오방실 등 1,2층 사무실에는 광주 재야인사들이 모여 시국을 논의했다.
일제하 흥학관도 그랬다. 1924년 6월4일 야구대회 편파 판정과 폭행 사건을 계기로 광주고보 학생들이 대규모 동맹휴학을 벌였다. 일본인 교장과 학교측은 전교생 400명에게 무기정학을 내렸다. 특히 지방학생 100여명은 교장이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등교 거부를 선언, 사태가 확산됐다. 6월21일 광주 거주 학부모들이 나섰다.
이들은 흥학관에 모여 최상진, 지용수 등이 참여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갖고 ▶무기정학 처분 취소 ▶교장 퇴직 ▶불응시 도민대회 개최 ▶조선 총독에게 진정 등을 결의했다. 학부모들은 25일 다시 흥학관에서 '전남학부형 대회'를 열어 재차 결의를 확인했다. 이는 학생과 학부모가 연대한 첫 사례로, 흥학관은 항일운동의 새로운 무대가 됐다.
1926년 광주고보생 왕재일·장재성 등이 비밀결사' 성진회'를 결성했다. 왕재일은 이곳에서 숙식을 하며 야학에서 학업을 쌓았다. 성진회 회원 대부분은 흥학관을 드나들며 청년운동가들과 교류한 학생들이었다. 성진회는 이듬해 초 위장해산했지만, 1929년 6월 독서회중앙부로 발전해 각급학교 비밀독서회를 총괄하면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핵심 기반이 됐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시내에서 한·일 학생들이 충돌했다. 늘 있어왔던 학생들의 갈등과 패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들어 갑자기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조선독립, 일제교육 철폐를 외쳤다. 전혀 다른 양상의 시위였다. 이 뒤바뀐 시위에는 배후가 존재했다. 바로 흥학관에 입주해있던 청년단체들이었다.




옛 흥학관 터에 들어선 아트 스페이스 흥학관. 옛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부착돼 있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11월 3일 오전 광주시내에서 벌어진 한일학생들의 우발적인 충돌이 점심시간대 광주고보 강당에서 열린 결의대회 이후 오후들어 조직적인 거리시위로 변하는데 그 중심에 흥학관이 있었다"면서 " 당시 흥학관 사회단체 사무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전남청년연맹위원장 장석천 등이 청년지도자들과 긴급회의를 갖고 거리시위로 전환할 것을 장재성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흥학관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전략본부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흥학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장재성과 장석천이다. 장재성은 광주고보 재학 중 비밀결사 성진회를 주도한 인물이다. 성진회는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한다'는 맹세로 출발해, 곧 독서회로 발전했다.

그는 독립정신을 키워준 공간으로 흥학관을 꼽았다. 훗날 그는 "흥학관을 드나드는 학생만 성진회 회원으로 뽑았다"고 증언했다. 장석천(1903~1935)은 전남청년연맹 위원장으로,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조직적 민족운동으로 이끌어낸 청년 지도자다. 그는 평소 흥학관을 근거지 삼아 청년운동을 주도했으며, 학생들과의 긴밀한 접촉을 통해 세대 간 연대를 실현했다.




최흥종은 흥학관을 통해 여성교육과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추진에 나선다. 동생 최영욱의 부인인 김필례가 여성교육을 맡고, 소설가 박화성(본명 박경순) 등을 야학과 어린이 교사로 세운다. 1920년 9월 1일부터 광주여성야학을 운영해 여성 배움을 지원하고 1921년 10월 광주유치원을 개원한다. 사진은 1921년 광주유치원 첫 졸업식./광주 동구 제공


#광주청년운동의 메카 구시청 연원

흥학관은 1920년대 광주 청년운동의 메카였다. 1917년 흥학관이 들어섰던 인근에 세워진 신문잡지종람소를 이어받은 듯 하다. 종람소 회원들은 1919년 광주 3·1운동을 주도했다. 사실상 공개적인 문화시설이었지만, 내부 회원들은 결사체 성격을 지녔다. 흥학관도 종람소처럼 청년문화공간 역할을 수행하지만 독립운동 거점 임무를 실천했다. 어쩌면 광주항일운동의 심정이었다.




흥학관 터에 들어선 광주시청사. 구시청이란 지명의 유래된 시청이다.


1925년 광주면사무소가 흥학관 건물 바로 옆에 담 하나를 두고 들어섰다. 이후 광주면이 읍과 부로 승격되면서 면사무소는 읍사무소와 부청(시청)으로 개칭됐다. 1942년 흥학관 부지 소유자는 최명구의 아들 최상현에서 광주부로 바뀌었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과 강제징용 등 전시동원체제로 청년공간이 숨쉴 틈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청년운동의 실효성을 상실한 흥학관을 광주부에 넘긴 것으로 보인다.
흥학관은 이후 해방 전까지 광주 식량배급조합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정부 수립 후부터 제2공화국 때까지 광주시의회 의사당으로 쓰였다. 최초의 광주시의회였다. 그러다 1960년대 광주시청이 계림동으로 옮길 때 건물이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지금 흥학관 옛터에는 흥학관 이름을 단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흥학관 아트스페이스다. 최근에는 흥학관을 테마로 한 음악공연도 열렸다. 이범식 아트스페이스 대표는 "아트스페이스는 흥학관이 자리했던 곳으로 광주정신의 응축지"라면서 "흥학관 정신을 살리고자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열고 있으며, 가능하다면 아트스페이스가 들어있는 건물에 흥학관을 알리는 작은 공간을 꾸미고 싶다"고 밝혔다.
장재성과 장석천, 왕재일 등 식민지 청년들의 결기 서린 흥학관. 비록 그 건물은 사라졌지만 청년의 열정과 항일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으리.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
위치: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35번길 16-4 일대(흥학관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