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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일부 기업 노조의 고용세습 문제를 지적하면서, 노조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노조원 자녀를, 그것도 '아들'만 우선 채용하는 구시대적 제도를 도입하려던 KG모빌리티의 사례는 '노조 혐오' 목소리에 기름을 부었다.
그렇다면 이런 제도가 현재 일부라도 현장에서 시행되고 있을까. 노동계뿐 아니라 경영계에서도 노조원 자녀 고용세습을 보장하는 단체협약 조항은 모두 삭제되거나 사문화됐다고 설명한다.

아버지 퇴사하면 아들 채용 추진한 KG모빌리티

차 할부금

KG모빌리티 경기 평택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KG모빌리티 제공


이번 논란의 시발점은 자동차 제조기업 KG모빌리티였다. 이 회사는 지난달 '기술직 트레이드'를 추진했는데 1968년 이후 출생한 기술직 직원이 자발적으 농협대출모집인 로 퇴사를 신청하면 해당 직원의 아들을 대신 채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회사 안팎에서 일반 취업준비생들의 공정한 채용 기회를 가로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 대통령은 KG모빌리티 사례를 언급하며 "이래선 안 된다. 불공정의 대명사 아니냐"며 "힘이 있다고 현직 노조원 자녀를 특채하라고 해서 그걸 규정으로 만들면 다른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할 씨티은행 수 있다"고 비판했다. KG모빌리티 역시 논란이 거세지자 퇴직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과거 노조원 고용세습을 보장하던 관행은 제조업, 그중에서도 '완성차 대기업'에서 도드라진 문제였다. 현대차는 신입 사원 채용 시 조합원 자녀는 가산점을 줬고 기아차는 장기근속자와 정년퇴직자 자녀 등을 우선 채용하도록 했다. 20 현대캐피탈 자동차할부 15년 정치권으로부터 '고용세습 최악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GM대우(현재 한국지엠)는 산업재해 질병 퇴직자와 장기근속자, 정년퇴직자 직계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조항을 뒀었다.
이런 현상은 노동계 일부에서 사업주들이 경영권과 사업체를 세습하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고용을 세습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 뿌리를 뒀다. 또 노조 전임자의 노조 영어로수업진행 관련 업무를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타임오프제' 시간이 조합원 숫자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노조 가입이 확실한 노조원 가족을 우선 채용하려는 곳도 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였던 2022년 고용노동부는 100인 이상 사업장의 단체협약 1,057건을 조사한 결과 63개의 단체협약에서 위법한 특별채용 조항을 확인했다.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업무외 상병자·직원의 직계가족 채용이 58건, 노조 또는 직원의 추천자 채용이 5건으로 나타났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100명 이상 300명 미만 30건, 300명 이상 999명 21건, 1,000명 이상 12건으로 나타났다. 상급단체별로는 민주노총 43건, 한국노총 18건, 미가입 2건으로 집계됐다. 당시 노동부는 "고용세습 조항은 구직자와 다른 조합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며 노동시장에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청년들을 좌절케 하는 불공정 행위"라고 지적하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7월 31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 선적부두 인근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과 기사는 직접 관련이 없음. 뉴스1



노사정 모두 "현재는 없다"
하지만 이런 고용세습은 현재는 사라졌다고 한다.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관계자는 "개별 기업 단체협약 내용을 모두 확인하기 어렵지만 주요 기업들은 고용세습 조항이 삭제됐거나 사문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 당시 노조 고용세습 문제를 "극히 일부 사례라고 믿겠지만"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고용세습이 현재 주요 문제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 현대차는 고용세습 조항을 삭제했고 기아차는 산재 질병 사망자 직계가족 1인 우선 채용으로 축소했다. 한국지엠도 임직원 자녀 우선채용이 사문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경영계도 비슷한 인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이 대통령 발언 이후 상황을 점검해보니 2022~2023년 사이 주요 기업 고용세습 조항은 전부 삭제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전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2022년 지적받은 63개 단체협약은 모두 폐지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재 없다고 해서, 향후에도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KG모빌리티가 이번에 도입을 시도했던 것만 보더라도, 사회적 감시가 지속되어야 할 부분임이 분명하다.

산재 피해자 구제 위한 고용세습은 인정돼



2020년 6월 1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유족 특별채용'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대법관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사실 노조원 고용세습은 합리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산재 사고로 사망하거나 질병을 얻은 노조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사업주가 산업안전을 어기거나 유해물질 노출로 노동자가 죽거나 병을 얻으면 노동자 가족 전체의 삶이 무너진다"며 "임직원 자녀 우선 채용도 산재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대법원도 지난 2020년 산재 피해를 입은 노동자 직계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단협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한 이모씨는 23년간 금형세척 업무를 담당했다. 2008년에는 현대차 남양연구소로 전출됐는데 6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투병 끝에 2010년 사망했다. 이씨가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일한 것이 인정돼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았다.
이에 유족은 당시 현대기아차 단협에 존재했던 '조합원이 산업재해로 사망할 경우 결격사유가 없는 직계가족 1명에 대해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규정에 근거, 자녀 1명을 채용해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사측에 고용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규정"이라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산재 노동자 유족 특별채용은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거나 우선채용하는 합의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씨 죽음 10년 만에 산재 피해 노동자를 구제하는 고용세습의 정당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 앞에서 건설산재 유가족·5대 종단 종교인 등이 건설의 날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한 건설 현장을 위한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과 기사는 직접 관련이 없음. 정다빈 기자



"사라진 노조 고용세습 빌미로 노조 불신 과해"
전문가들은 고용세습 논란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은 "노조원 가족에 대한 고용세습이 불공정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현재 고용세습은 대부분 기업에서 폐지됐고 산재 피해자 구제 등의 긍정적 측면도 있다"며 "무엇보다 고용세습이 노동계 현안도 아닌데 이번 논란으로 청년층이 노조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고 불필요한 갈등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문화된 고용세습 문제를 고리로 노란봉투법이나 주4.5일제 등 주요 노동현안까지 공격하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직격이 있었지만 노동부는 노조 고용세습 문제에 대해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일상적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노사 단체협약 조사는 2022년 이후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노동부 관계자는 "단체협약이 매년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후속 조사는 아직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노동부 관계자는 "불공정 채용은 상반기, 하반기 각각 600여 개 업체를 선별해 조사를 진행하거나 불공정 채용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를 진행한다"며 "올해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