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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해방80주년을 맞아 미국 프로파간다 기관의 비밀 보고서 1만 5,000여 쪽을 입수해 주요 활동을 공개한다. 또 트럼프 2기 시대의 한미 관계 주요 이슈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도 차례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전국 대학가에서 박정희 정권의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세게 벌 장기임대아파트 어지던 1965년 3월, 주한미공보원(USIS 한국)과 주한 미대사관이 미국 정보처(USIA)에 전문을 하나 보낸다.
“USIS가 2월 23일부터 3월 3일까지 한국 대학 학생신문 편집인 30명을 일본에 파견한 프로젝트는 한일 관계 정상화와 관련한 청년 대상 단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기사들이 이미 대출금상환방식 학생 신문에 게재되고 있다.”
미국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가장 걸림돌 중 하나였던 한국 대학생들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프로파간다 공작을 편 사실이 드러나는 문건이다.
1964년 봄부터 1965년 6월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 체결과 그해 12월 조약 발효까지 한국 사회는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로 국제대학원 들끓었다. 하지만 이 뒤에서 미국은 반대 여론을 약화시키기 위해 체계적인 여론전을 벌이고 있었다. 뉴스타파가 미국 국가기록관리처(NARA)에서 발굴한 미국 정보처(USIA)와 주한 미공보원(USIS Korea)의 미공개 문서들은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이 벌인 심리전의 실체를 드러낸다.
격렬한 반일 여론, 반미로 이어질까 우려
근로자생애최초 1964년 봄, 야당과 대학생의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가 거세지자 주한 미공보원(USIS Korea)은 이를 "폭력으로 점철된 학생 시위(violence-studded student demonstrations)"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한일 국교 정상화 문제는 극도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더욱 섬세(more delicate)"하게 다뤄야 카드불법모집 한다며, 학생들과 기타 인사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진행(proceed cautiously)"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봤다.
USIS Korea가 1964년도에 수행한 활동을 종합 점검한 ‘평가 보고서(Assessment Report - Korea 1964)’에 기록한 내용이다.
거센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여론 앞에서 미국 정부가 우려한 건 반일 감정과 반미 감정이 결합될 위험성이었다. 미국이 한일 회담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USIS의 1965년 평가 보고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분석한다.
연초에는 한일 관계 정상화 노력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을 우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USIS가 학생들과 접촉한 결과, 야당 정치인들과 좌익 동조자들이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불안감을 이용해 정상화에 반대하도록 영향을 미치고 미국이 한국 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확신시키려 한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USIS 1965년도 평가보고서(Country Assessment Report)
USIS의 여론 공작, 대학생 기자 일본 방문 프로젝트
USIS Korea는 대학생들의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 중 하나가 대학 여론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학 신문 편집국장 등을 일본에 보내 인식 변화를 꾀한 것이다.
USIS는 한국 학생들의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의견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한국 교육부 및 공보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두 차례의 학생 일본 방문을 주선하고 진행했다.- USIS 1965년도 평가보고서(Country Assessment Report)
첫 번째 프로젝트는 1965년 2월 23일부터 3월 3일까지 30명의 주요 대학 신문 학생 편집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USIS와 주한 미대사관이 공동 작성해 1965년 3월 18일 본국에 보낸 문건은 첫 번째 방문 프로젝트가 ‘매우 성공적(EMINENTLY SUCCESSFUL)’이었다고 평가했다. 그 근거로 학생 신문들에 ‘호의적인 기사들(FAVORABLE ARTICLES)’이 실리고 있음을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평가 세미나의 분위기 역시 매우 좋았다고 보고했다.
USIS와 주한미대사관이 공동 작성해 워싱턴 미 정보처 USIA에 보낸 전문(1965년 3월 18일자)
대사가 참석한 평가 세미나에서 대학 신문 편집인인들은 이번 방문이 자신들의 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동의했다. 여러 대학 총장들도 교육부 장관에게 교수들과 학생들 사이의 긍정적인 반응에 대해 말했다.- USIS와 주한 미대사관이 공동 작성해 워싱턴 USIA에 보낸 전문
이 전문에 따르면 첫 번째 프로젝트의 성공에 고무된 한국 정부는 USIS에 두 번째 프로젝트를 긴급하게 요청했다. 교육부는 비용의 일부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USIS는 “완전한 통제권 유지(RETAIN FULL CONTROL)”를 위해 자신들이 예산을 전액 부담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대학 신문 편집장들을 일본에 데리고 간 프로젝트가 단순한 문화교류가 아니라 미국 프로파간다 기관이 정교하게 기획한 심리전의 일환이었음을 시사한다.
USIS, 대학신문 기자 일본 견학이 여론에 변화 가져왔다
USIS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본에 긍정적 인식이 등장한 것을 두고, 일본 방문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이 두 프로젝트는 대학 신문에 일본인들의 변화된 태도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하는 그들의 열망을 강조하는 수많은 기사가 실리게 만들었다.- USIS 1965년도 평가보고서(Country Assessment Report)
뉴스타파는 USIS 보고서 대로 당시 주요 대학 신문에 일본 방문 프로젝트(1965년 2월 23일~3월 3일)에 참여한 대학생 기자들의 일본 방문기가 시리즈로 실린 사실을 확인했다.
1965년 3월 15일 연세대 연세춘추 기사
1965년 3월 22일 서울대 대학신문 기사
연세대 ‘연세춘추’에 실린 '체류 200시간' 이라는 제목의 방문기는 “선입관념의 껍질을 벗고” 일본을 봐야 한다며, 감정적 대응보다 “이성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대 ‘대학신문’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방문기가 연재됐다. '너무나 막연한 韓國觀, 澈底(철저)한 享樂主義(향락주의)에 흐르고' 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일본 사회의 단면과 그들의 한국 무관심을 지적하면서도, 관찰자적 입장에서 일본을 분석하려 노력한다.
USIS는 일본 방문 프로젝트 이후 대학생들의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 참여 의지 자체가 약화됐다는 평가도 내렸다.
이후 야당이 한일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를 위해 학생들에게 거리로 나올 것을 설득하려 했을 때, 일본을 다녀온 한국 학생들과 다른 학생들이 보고하기를, 전체적으로 학생들은 그런 권유에 지쳤으며 공부에 전념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물론 많은 학생들이 동료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시위에 참여하기는 했다.- USIS 1965년도 평가보고서(Country Assessment Report)
동아일보 논설위원도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여론 잠재우기에 동원
USIS는 여론전에 우력 언론인도 동원했다. USIS는 그 대표적 사례로 1964년 평가보고서에서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동욱을 꼽으며, USIS 접근법의 ‘전형적인 예(typical of the approach)’라고 기록했다.
USIS가 후원하는 강연자들과 USIS 센터에 모이는 학생 단체들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점점 더 활발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방문 프로그램 수혜자이자 국내 최대 신문사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인 이동욱이었다. 그는 USIS가 후원하는 한 순회 강연에서, 한국이 가장 큰 이익을 얻을 것이므로 한일 회담을 조기에 타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USIS 1964년도 평가보고서(Country Assessment Report)
한일 협정 체결 이후에도 한일 관계 두고 USIS 심리전 계속
USIS는 한일 협정 이후에도 한국에서 반일 여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한일 협정 이후인 1965년 8월 19일에 USIS 코리아가 워싱턴 USIA로 보낸 ‘Country Plan: Section V - Program Activities’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한일 협정 비준 후에도 한일 협력의 장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한일 협정 비준 후, 미국이 양국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서, 신중하고 간접적인 활동을 통해 한일 국교 정상화화의 이점, 특히 경제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USIS 대 한국 국가계획(Country Plan: Section V - Program Activities: 1965년 8월 19일)
뉴스타파 김용진 muckraker@newstapa.org
뉴스타파 오나영 zer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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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학가에서 박정희 정권의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세게 벌 장기임대아파트 어지던 1965년 3월, 주한미공보원(USIS 한국)과 주한 미대사관이 미국 정보처(USIA)에 전문을 하나 보낸다.
“USIS가 2월 23일부터 3월 3일까지 한국 대학 학생신문 편집인 30명을 일본에 파견한 프로젝트는 한일 관계 정상화와 관련한 청년 대상 단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기사들이 이미 대출금상환방식 학생 신문에 게재되고 있다.”
미국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가장 걸림돌 중 하나였던 한국 대학생들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프로파간다 공작을 편 사실이 드러나는 문건이다.
1964년 봄부터 1965년 6월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 체결과 그해 12월 조약 발효까지 한국 사회는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로 국제대학원 들끓었다. 하지만 이 뒤에서 미국은 반대 여론을 약화시키기 위해 체계적인 여론전을 벌이고 있었다. 뉴스타파가 미국 국가기록관리처(NARA)에서 발굴한 미국 정보처(USIA)와 주한 미공보원(USIS Korea)의 미공개 문서들은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이 벌인 심리전의 실체를 드러낸다.
격렬한 반일 여론, 반미로 이어질까 우려
근로자생애최초 1964년 봄, 야당과 대학생의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가 거세지자 주한 미공보원(USIS Korea)은 이를 "폭력으로 점철된 학생 시위(violence-studded student demonstrations)"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한일 국교 정상화 문제는 극도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더욱 섬세(more delicate)"하게 다뤄야 카드불법모집 한다며, 학생들과 기타 인사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진행(proceed cautiously)"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봤다.
USIS Korea가 1964년도에 수행한 활동을 종합 점검한 ‘평가 보고서(Assessment Report - Korea 1964)’에 기록한 내용이다.
거센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여론 앞에서 미국 정부가 우려한 건 반일 감정과 반미 감정이 결합될 위험성이었다. 미국이 한일 회담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USIS의 1965년 평가 보고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분석한다.
연초에는 한일 관계 정상화 노력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을 우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USIS가 학생들과 접촉한 결과, 야당 정치인들과 좌익 동조자들이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불안감을 이용해 정상화에 반대하도록 영향을 미치고 미국이 한국 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확신시키려 한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USIS 1965년도 평가보고서(Country Assessment Report)
USIS의 여론 공작, 대학생 기자 일본 방문 프로젝트
USIS Korea는 대학생들의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 중 하나가 대학 여론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학 신문 편집국장 등을 일본에 보내 인식 변화를 꾀한 것이다.
USIS는 한국 학생들의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의견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한국 교육부 및 공보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두 차례의 학생 일본 방문을 주선하고 진행했다.- USIS 1965년도 평가보고서(Country Assessment Report)
첫 번째 프로젝트는 1965년 2월 23일부터 3월 3일까지 30명의 주요 대학 신문 학생 편집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USIS와 주한 미대사관이 공동 작성해 1965년 3월 18일 본국에 보낸 문건은 첫 번째 방문 프로젝트가 ‘매우 성공적(EMINENTLY SUCCESSFUL)’이었다고 평가했다. 그 근거로 학생 신문들에 ‘호의적인 기사들(FAVORABLE ARTICLES)’이 실리고 있음을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평가 세미나의 분위기 역시 매우 좋았다고 보고했다.
USIS와 주한미대사관이 공동 작성해 워싱턴 미 정보처 USIA에 보낸 전문(1965년 3월 18일자)
대사가 참석한 평가 세미나에서 대학 신문 편집인인들은 이번 방문이 자신들의 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동의했다. 여러 대학 총장들도 교육부 장관에게 교수들과 학생들 사이의 긍정적인 반응에 대해 말했다.- USIS와 주한 미대사관이 공동 작성해 워싱턴 USIA에 보낸 전문
이 전문에 따르면 첫 번째 프로젝트의 성공에 고무된 한국 정부는 USIS에 두 번째 프로젝트를 긴급하게 요청했다. 교육부는 비용의 일부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USIS는 “완전한 통제권 유지(RETAIN FULL CONTROL)”를 위해 자신들이 예산을 전액 부담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대학 신문 편집장들을 일본에 데리고 간 프로젝트가 단순한 문화교류가 아니라 미국 프로파간다 기관이 정교하게 기획한 심리전의 일환이었음을 시사한다.
USIS, 대학신문 기자 일본 견학이 여론에 변화 가져왔다
USIS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본에 긍정적 인식이 등장한 것을 두고, 일본 방문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이 두 프로젝트는 대학 신문에 일본인들의 변화된 태도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하는 그들의 열망을 강조하는 수많은 기사가 실리게 만들었다.- USIS 1965년도 평가보고서(Country Assessment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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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3월 15일 연세대 연세춘추 기사
1965년 3월 22일 서울대 대학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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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IS는 여론전에 우력 언론인도 동원했다. USIS는 그 대표적 사례로 1964년 평가보고서에서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동욱을 꼽으며, USIS 접근법의 ‘전형적인 예(typical of the approach)’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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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협정 체결 이후에도 한일 관계 두고 USIS 심리전 계속
USIS는 한일 협정 이후에도 한국에서 반일 여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한일 협정 이후인 1965년 8월 19일에 USIS 코리아가 워싱턴 USIA로 보낸 ‘Country Plan: Section V - Program Activities’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한일 협정 비준 후에도 한일 협력의 장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한일 협정 비준 후, 미국이 양국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서, 신중하고 간접적인 활동을 통해 한일 국교 정상화화의 이점, 특히 경제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USIS 대 한국 국가계획(Country Plan: Section V - Program Activities: 1965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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