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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글·사진 박경일 기자
# 무더위 속에 피는 연꽃, 지금 절정
전남 무안에는 순백의 연꽃이 피는 회산방죽이 있다. 33만여㎡(10만 평)에 달하는 방죽에 지금 연꽃이 한창이다. 여행 목적지의 매력으로 읽힐 때의 꽃은 뚜렷한 유행이 있다. 꽃은 거기 그대로 있는데, 여행자의 변덕이 죽 끓는다. 지금 시세가 높은 건 단연 ‘수국’과 ‘댑싸리’다. 신용불량자 회복 핑크뮬리가 인기를 끌었던 적도 있고, 여행자들이 구절초나 해바라기를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오래된 얘기지만, 연꽃이 인기를 누렸던 시절도 있었다. 그 무렵 무안의 회산방죽은 부여의 궁남지와 함께 연꽃의 최고 명소였다. 회산방죽에는 백옥같이 맑은 백련이 가득했다. 지금이야 다들 화려한 색깔의 꽃에 정신을 팔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백련의 깨 보험사전세자금대출조건 끗하고 우아한 자태도 봐줄 줄 알았다. 꽃에 대한 대중의 취향은 ‘어쩐지 입맛과 비슷하다’는 생각. 저자극의 묵직한 무덤덤한 무안 회산방죽의 백련은 음식으로 치면 평양냉면이다.
지금 무안의 회산백련지는 이전에 비하면 한결 인기가 덜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연꽃은 모두 그늘만 찾는 폭염 속에 만개하니, 꽃을 보러 가는 데 여간 은행 적금 금리 성의가 필요로 한 게 아니다. 그 성의를 이끌어 내는 게 지방자치단체의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그런데 무안군은 수년 전 뜬금없이 ‘연꽃 축제’를 ‘연 산업축제’로 바꾼 적이 있다. 연은 뿌리부터 줄기, 잎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으니 이를 산업적으로 발전시키자는 취지야 이해하겠는데 그거야 공급자 사정일 뿐. 결정적으로 축제까지 그럴 인터넷소액대출 필요가 있었을까. 관광객이 ‘연꽃’이 아니라 ‘연 산업’을 보러온다고 믿었나. 그리고 무안의 연 산업 규모가 과연 그만큼이나 컸을까.
축제의 핸들을 갑자기 ‘꽃’에서 ‘산업’ 쪽으로 튼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 연꽃 축제의 불교적 색채를 불편해한 지자체장의 ‘종교적 신념’ 때문이란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돌았다. 유행이 지나서 그랬을까, 아 하나은행 대출상담 니면 이렇듯 우여곡절을 겪어서였을까. 언제부턴가 무안 연꽃축제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회산백련지에 만개한 백련. 맑고 깨끗한 순백의 연꽃에서 단아함과 품격이 느껴진다.


# 축제가 지나간 연꽃 방죽의 호젓함
무안 연꽃축제는 지난 6월 26일 개막해 나흘 동안 열었다. 예년보다 무려 한 달이나 빨랐다. ‘기후변화로 꽃 피는 시기가 앞당겨져서’라고 했지만, 한두 주도 아니고 갑자기 한 달씩 앞당긴 이유가 잘 설명이 안 된다. 짐작하건대 7월 중순부터 말까지 폭염과 집중호우 등 기후적 변수가 많다는 걸 고려한 듯하다. 실제로 2023년 전국에 집중호우 피해가 잇따르자 축제를 ‘전면 취소 수준’으로 축소 운영한 적이 있다. 차라리 꽃이 없는 것이,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었을까.
올해 연꽃축제는 ‘연꽃 없는 연꽃 축제’였다. 딱 예상했던 대로다. 축제 관람객은 꽃 없는 축제가 서운했을 법하지만, 지금은 이른 축제 덕분에 만개한 연꽃을 여느 해보다 더 호젓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뜻하지 않았던 일이다.
축제가 끝나고 보름쯤 지나면서 연꽃이 본격적으로 개화했는데, 절정은 이번 주말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꽃은 절정을 넘겨도 지고 또 피어나서 족히 보름은 더 꽃을 보여준다.
이곳에 언제부터 연꽃이 피기 시작했을까. 회산방죽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간척지 영화농장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였다. 당시에는 복룡마을 지명을 따서 복룡지라 불렀다. ‘회산(回山)’이란 방죽의 이름은 영산강을 따라 들어온 배들이 여기쯤에서 산을 돌아 다시 내려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55년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저수지에 12개의 연뿌리를 가져다 심은 것이 연꽃의 시작이었다. 연뿌리를 심은 날, 그는 열두 마리 학이 저수지에 내려앉는 꿈을 꾸었단다. 그 얘기를 들은 주민들이 정성을 다해 백련을 가꿔 지금의 회산백련지를 만들었다. 공공이 아닌 주민의 자발로 70년 전에 민간 생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셈이었다.



진초록 연잎이 수면에 가득한 회산백련지 물 위에 놓은 목책 산책로. 왼쪽 뒤로 보이는 게 유리온실 카페다.


# 몽탄, 꿈의 여울을 따라가다
이제 영산강으로 간다. 영산강을 끼고 무안 몽탄면이 있다. 몽탄(夢灘). ‘꿈 몽(夢)’자에 ‘여울 탄(灘)’자를 쓴다. ‘꿈의 여울’이라는 서정적인 느낌의 이름인데, 지명 유래에 새겨진 건 뜻밖에 전쟁의 역사다.
전해지는 얘기가 이렇다. 고려의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하다 수세에 몰려 여기까지 퇴각한다. 영산강에 가로막혀 물을 건너지 못한 왕건의 꿈에 홀연히 백발노인이 나타난다. 꿈속의 노인으로부터 “이곳의 물은 깊은 물이 아니라, 얕은 여울이니 빨리 건너가라”는 말을 듣고 나루를 건넌 왕건은, 전열을 가다듬은 뒤 견훤 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다.
두 곳 모두 다 꿈으로 시작한다. 꿈에 보인 학 열두 마리가 회산방죽을 연꽃밭으로 만들었다면, 왕건을 구해준 백발노인의 예지몽은 고려 건국의 씨앗이 됐다. 왕건의 꿈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후세 사람들이 여기를 몽탄이라 불렀다. 입에서 입으로 건너다니던 몽탄이란 이름은, 1939년 석곡면이었던 지명을 몽탄면(夢灘面)으로 바꾸면서 정식으로 지도에 올려졌다.
꿈의 여울, 그러니까 무안의 몽탄은 영산강이 목포 앞바다에 닿기 전에 마지막으로 급하게 굽이치며 흐르는 곳이다. 여기를 ‘느러지’ 또는 ‘늘어지’라 부른다. 강물의 유속이 느려져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고, 강이 감아 도는 땅의 모습이 축 ‘늘어졌다’는 뜻으로 붙인 지명이란 얘기도 있다.
무안의 느러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느러지전망관람대’가 나주에 있다. 느러지는 무안 몽탄면에 있지만, 전망대는 강 건너 나주 동강면에 있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무안에서 몽탄대교만 건너면 전망대까지는 금방이다. 전망대 코앞 주차장까지 차로 쉽게 갈 수 있다.
느러지전망대에 올라서 보는 풍경이 제법 장쾌하다. 영산강의 물길이 ‘위아래를 뒤집은 오메가(Ω)’ 모양을 그리며 굽이쳐 흐른다. 과거 이곳을 곡강(曲江)이라 불렀다는데, 물굽이를 보면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전망대에 오르면 그래도 높은 곳이라고, 강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영산강 변의 운치 있는 정자 식영정. 팽나무와 푸조나무 노거수 그늘 속에 있다.


# 쉬기를 꿈꿨던 선비가 마련한 정자
느러지전망대에서 다시 영산강 건너 무안 땅으로 돌아간다. 느러지 하류 쪽의 배뫼마을에 정자 식영정이 있다.
식영정이라면 사위가 임억령을 위해 지어준 담양의 정자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한자가 다르다. 담양의 식영정은 숨쉴 식(息)자에 그림자 영(影)자를 쓰는데 여기 영산강 변의 정자는 숨쉴 식(息)자에 경영할 영(營)자를 쓰는 息營亭(식영정)이다.
현판에 걸어 둔 이름은 둘 다 ‘쉬는 것(息)’을 말하지만, 뉘앙스는 살짝 다르다. 담양의 식영정이 ‘그림자를 쉬게 한다’는 문학적 표현이라면, ‘영리 추구를 그만둔다’는 무안의 식영정은 직설적이고, 단호한 느낌이다.
무안 식영정을 지은 건 임연이다. 20대 초반 일찌감치 벼슬길에 나섰지만, 내내 부임과 용퇴를 거듭했다. 광해군 때 물러났고, 인조반정 후 다시 나아갔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치욕의 항복 이후 무안으로 돌아와서 비로소 꿈꾸던 휴식을 찾았다.
그는 늘 쉼을 생각했다. ‘한가할 한(閑)’자에 ‘좋을 호(好)’를 써서 ‘한가함을 좋아한다’는 뜻의 ‘한호(閑好)’를 호로 삼았을 정도였다. 진짜 지겨워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줄줄이 벼슬을 지낸 공직자의 의례적 겸손이었을까.
임연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 식영정 자리를 찾아내곤 무릎을 쳤다. 그는 식영정 자리를 “지세가 그윽하여 기운이 머물렀고, 물맛이 좋으며 땅은 비옥하여…강과 산, 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했다”고 썼다. 400년 전에 그가 묘사한 식영정이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산강 물줄기가 휘돌아 나가는 자리에서 주위 풍경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자리. 정자 주변으로는 수령 500년을 족히 넘긴 팽나무며 푸조나무의 그늘이 깊다.
# 무안에만 기차역이 다섯 개였다고?
무안에는 호남선 노선의 다섯 개 기차역(驛)이 있었다. 사창역, 몽탄역, 명산역, 일로역, 임성리역. 호남선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노선에서도 한 지역이 다섯 개 역을 가진 건 거의 여기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몽탄면에만 기차역이 세 개였으니, 이 역시 기록이겠다.
지금은 사창역이 무안역으로 바뀌고, 명산역은 호남선 복선화 과정에서 사라졌다. 몽탄역과 임성리역도 일찌감치 무인화 대상 역 목록에 올라 있다.
몽탄역이 처음 문을 연 건 1913년이지만 그때는 역 건물도, 역무원도 없는 무배치 간이역이었다. 그러다 1919년 역무원을 배치했고, 1927년에 비로소 번듯한 역사를 신축하고 보통역으로 승격했다. 1985년 당시 몽탄역장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그즈음 몽탄면에는 동네 14곳, 학교 3개, 공장 2개가 있었고, 인구는 1만2927명에 달했다. 그때 몽탄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승객은 하루 1159명이었다.
삼각형 지붕과 독특한 지붕창이 인상적인 지금의 몽탄역은 2001년 호남선 복선 과정에서 다시 지어진 역이다. 몽탄역에서는 이제 기차표도 팔지 않고, 야간이나 주말에는 역무원도 근무하지 않는다. 그래도 역은 아직도 ‘현역’이다. 상·하행선 합쳐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열차가 하루 열세 번 선다. 그래 봐야 하루 타고내리는 손님이 서른 명을 넘지 않지만 말이다.
몽탄역은 현역 기차역이면서 작은 철도박물관이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디자인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역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잃어버린 ‘교통의 중심’ 역할 대신 ‘지역 문화의 중심’을 하는 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였다. 프로젝트의 정점은 2017년 몽탄역에서 치러진 ‘호남선 추억의 몽탄’ 축제였다. 철도와 주민들의 삶을 그린 창작극이 무대에 오르고 노래자랑 등이 펼쳐졌다. 레일바이크 타기와 기차모형 만들기 등의 체험도 진행했으니 제법 알찬 축제였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축제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기차역이면서 작은 철도박물관까지 겸하고 있는 몽탄역.


# 몽탄 역에서 시(詩)를 읽다
몽탄역에는 ‘100년의 호남선 역사 사진전’과 함께 과거 기차역에서 쓰던 물건을 전시해 놓았다. 지역 주민들의 구술로 정리한 추억과 사연에 대해서도 볼 수 있다. 열차 승객이 너무 많아 열차 밖으로 밀려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증기기관차 시절 화부들이 선로 밖으로 석탄을 삽질하는 방식으로 빼돌려 술과 바꿔먹은 사연도 있다.
역 안에는 시 한 편이 붙어 있다. 박라연 시인의 ‘몽탄역’이다. “밤 기차를 타본 사람은 안다./마음속엔 몇 개의 몽탄(夢灘)역 있다는 것/…/꿈으로나 만나보는/꿈이어서 다행인 풍경이 있다는 것/…/앞마당에 목백일홍은 심지 마라/붉은 울음 빼내어 너, 주면 어쩔래/…” 혼곤한 꿈에 대한 이야기다.
몽탄역 이곳저곳 둘러보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노인이 자청해 ‘몽탄의 화려했던 과거’를 말해줬다. “그때는 읍내에 다방이 4개나 줄지어 있었고, 탁구장도, 당구장도 있었어. 몽탄 오일장에는 소를 걸고 씨름판이 벌어졌지.” 흥분해서 그가 설명해준 전성기 시절의 몽탄도 소박하기 그지없어서 어쩐지 짠한 느낌마저 들었다. 흥분한 그의 추억담에 감탄 섞인 추임새도, 장단도 넣을 수 없으니 좀 미안해졌다.
몽탄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방의 마르코폴로 견문록’으로 일컬어지는 ‘표해록’을 쓴 금남 최부의 묘가 있다. 범죄자를 쫓는 ‘추쇄경차관’이었던 그는 제주로 부임했다가 부친상 소식을 듣는다. 서둘러 육지로 돌아오던 그는 풍랑을 만나 13일 동안의 표류 끝에 중국 저장(浙江)성 해안에 도착했다. 그리고 갖은 고초를 겪으며 5개월 만에 조선으로 귀환했다. 그가 중국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한 책이 바로 표해록이다.
거센 풍랑과 표류에도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역사의 파고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연산군 때 갑자사화에 연루돼 참형을 당했다. 그는 해남에 묻혔는데, 1947년 후손들이 영산강을 끼고 있는 이곳 몽탄면 이산리로 이장했다.
# 초의선사의 자취를 기리는 곳
무안에는 내로라할 만한 굵직굵직한 볼거리가 없다. 그 앞에 섰을 때 깔끔하게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드물다. 다 어딘가 조금씩 부족하다는 느낌. 무안을 여행하면 느끼게 되는 건 순하고 밋밋한 맛이다. 잔뜩 기대를 품고 무안을 여행한다면, 필시 좀 모자라다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닳고 닳은 관광지와는 또 다른 매력이 무안에 있다. ‘기대는 내려놓고, 되도록 천천히….’ 그게 무안을 잘 여행하는 방법이다.
무안에는 ‘초의선사 탄생지’가 있다.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 승려이자 차인(茶人)이자 시인, 선승(禪僧)이다. 그를 다성(茶聖)이라 부르는 건, 차를 선(禪)의 경지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깜짝 놀란 건 고래등 같은 한옥의 규모다. 초의선사의 차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인 보제루도 그렇고, 참선과 다도 수련을 위해 지었다는 선원의 규모도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초의선사가 태어난 생가는 물론이고 초의가 말년에 머물렀던 대흥사 일지암도 재현해 놓았다.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정자 ‘용호백로정’까지 여기 세워놓았다. 초의선사는 동갑인 추사 김정희와 가깝게 지냈는데, 둘이 교류하던 곳이 바로 용호백로정이었다. 서울 용산에 있었다는 사실만 전해질 뿐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정자를, 옛 그림을 토대로 남도 땅에다 만들어놓은 셈이다.
무안의 대표 명소인 건 맞지만, 초의선사 탄생지는 실망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거의 모든 안내판 글자가 색이 바래서 도무지 읽을 수 없을 정도라는 것도 그렇고, 잘 지은 전시관 하나를 개인이 제집처럼 쓰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전시관 유리문에는 ‘2030년 말까지 묵언 수행 중’이란 글귀와 함께 ‘문도 두드리지 말라’고 쓰여 있다. 초의선사 탄생지 개관 당시에 자료 등을 제공했던 스님이 기거하고 있다고 했다.



몽탄남초 폐교를 활용해 조성한 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의 전시장.


# 무채색 같은 무안의 소박한 명소들
이번에는 무안의 고만고만한 명소를 모았다. 무안 청계면에는 정자 ‘화설당’이 있다. 화설(花雪)이란 이름은 400년 전쯤 나주 목사 박동열과 ‘간양록’을 지은 수은 강항이 함께 찾았다가 뜰에 핀 동백꽃이 눈에 덮인 걸 보고 붙인 이름. 정자에 건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칡나무 뿌리를 붓 삼아 쓴 것이다.
화설당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었다는데, 하나는 연못 곁에 있던 오래된 동백나무, 또 하나는 용 모양의 나무뿌리를 잘라서 만든 베개, 나머지 하나는 기이하게 생긴 괴석(怪石)이다. 늙은 동백은 60년 전쯤 죽었고, 베개는 후손이 팔아버려 행방을 모른다. 나머지 하나, 괴석만 정자 앞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화설당 근처에는 자그마한 폭포와 호랑이 전설이 전해지는 동굴을 거느린 소박한 사찰 마곡사가 있고, 팽나무와 개서어나무 노거수가 늘어선 숲도 있다. 무안읍의 성남리와 법천사 입구, 옛 총지사 터에는 저마다 모양이 다른 석장승도 남아 있다.
몽탄면 청룡리에는 폐교를 활용해 만든 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가 있다. 전시관에는 1960∼1970년대 이발관과 다방, 대폿집, 사진관, 장터거리 등을 재현해 놓았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시설이 흥미롭지만, 규모가 작은 게 아쉬울 따름. 입장료 2000원은 전액 지역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에어컨을 가동 중인 실내시설이니 더위도 피해갈 겸 들러가기를 추천한다.



■ 다땡겨식당
몽탄역 앞에는 ‘다땡겨식당’이 있다. 어쩐지 치기가 느껴지는 식당 이름이라 근래 문을 연 집인가 싶었는데 아니다. 지금의 주인이 30년 전쯤 지금의 상호로 영업하던 식당을 인수했단다. 특이하게도 식당을 팔고 나가는 전 주인이 ‘상호를 유지할 것’이란 인수 조건을 내걸었고, 지금껏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백반이 주력이고 추어탕, 닭백숙 등을 낸다. 소박하지만 음식에 정성이 담겨 있다.
박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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