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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남수래 작성일25-07-05 18:02 조회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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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릴게임장 ㎛ 다빈치게임다운로드 ㎛┢ 8.rgk574.top │국악계의 흥행 치트키로 불리는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이 하이힐을 신고 장구 위에 앉았다. 파격적인 패션과 퍼포먼스로 ‘한국의 레이디 가가’ ‘조선아이돌’로 불리지만, 인터뷰에선 전통 소리의 기본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내 소리가 무너지지 않아야 남을 설득할 수 있다”고.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옛것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키워내기는 더욱 어렵다. 이런 때는 가진 걸 움켜쥐고 버티거나, 검증된 길을 답습하려 몰려들거나, 이도 저도 안 되면 빼앗아 나눠 갖자는 발상이 난무한다. 모두가 패배한다.
답답한 이들에게 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민요 이수자 이희문(49)은 하나의 영감이 될지 모른다. 요즘 국악계의 흥 신한카드 연체 행 치트키(cheat key·게임 진행을 도와주는 명령어)로 불리는 인물. 10여 년 전부터 민요를 기반으로 여러 음악 장르를 섞고 파격적인 연출을 더해 국악계를 뒤집어놨다. 외국에서도 “세상 어디에도 없던 소리”(미국 NPR) “엄청나게 재미있다”(영국 가디언)는 찬사 속에 팬덤을 일으키면서 민요는 물론 한국 음악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 예금담보대출이자계산 가 단독이든 게스트로든 출연하는 국내외 공연은 매진 행렬이다. 쪼그라든 국악판, 그중에서도 판소리·사물놀이에 밀려 명맥을 잇기 어려웠던 경기민요는 이희문의 등장 이후 화려하게 부활했고, 차세대 스타들이 계속 나와 해외 진출 문을 두드린다. “이희문이 국악의 글로벌 스탠더드”(윤중강 평론가)라는 평도 나온다.
그에게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우리은행생애최초대출 비결을 물었다. ‘기본’이란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기본에 충실한 게 제일 중요해요. 기본, 그러니까 격(格)이 떨어지면 내 것을 지키는 것도 남을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해지거든요.”
국악계의 흥행 보증 수표
지금 이씨는 국립극장의 여름 국악 축제인 ‘2025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올해는 ‘민요의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장 사퇴 재발견’을 주제로 이달 4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국악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던 여우락이 이처럼 특정 분야만 다루는 것은 창설 16년 만에 처음이다.
이희문 예술감독은 4일 개막한 2025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쇼케이스 및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양쪽에 가수 보험설계사급여압류 인순이와 스승인 인간문화재 이춘희 명창. /연합뉴스
-출연진이 화려하던데요.
“가수 최백호가 청춘가와 몽금포타령을, 인순이가 서도소리 대가 유지숙 명창과 함께 수심가를 부릅니다. 재즈가수 웅산, 댄스가수 민해경, 뮤지컬 배우 아이비, 소리꾼 박애리, 힙합 듀오 마이티마우스와 인디밴드 까데호 등이 각 지방 민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선보일 거예요. 아마추어 여성 33명이 민요 합창도 하고, 젊은 남자 소리꾼들과 제 스승인 인간문화재 이춘희 명창이 정통 민요를 들려줄 겁니다. 출연진이 200여 명으로 역대 최다라고 해요.”
-그런 분들을 민요란 키워드로 모아 한 달간 축제를 한다니. 민요의 위상이 그 정도인가요?
“제가 여러 장르를 넘나들다 보니 친한 분이 많아요. 인순이씨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분인데 제 민요 공연에 찾아오셔서 교류하게 됐어요. 웅산씨도 제 분장실에 ‘나 팬이에요’라며 들어와 만난 게 시작이고요. 그런 분들을 잘 어울리겠다 싶은 소리꾼이나 연주자들과 하나하나 매칭해 무대를 기획했습니다.”
-이희문의 힘이군요.
“이런 대형 축제를 총괄하는 감투는 처음이라 감독 제안이 왔을 때 망설였어요. 고민 끝에 ‘제가 그간 민요를 다양하게 실험했던 경험치를 담아내고 싶다’고 역제안했더니 국립극장이 오케이했고요. 전통도 양식만 바꾸면 얼마든지 즐기며 들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겁니다. 그런데 감투 써보니까 그리 신나지만은 않더라고요. 저답지 않게 조심스러워져서요(웃음).”
세상에 없던 소리, 세계가 놀랐다
21세기에 ‘민요로 신나게 논다’는 게 뭔지 궁금하면 이희문이 소리하는 모습을 보면 된다. 그가 2017년 국악 퓨전 그룹 씽씽밴드와 함께 미 워싱턴 DC에서 전미공공라디오(NPR)가 연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 나와 드럼과 베이스 반주에 맞춰 빨간 펑키헤어를 낭창낭창 흔들며 베틀가·오봉산타령·한강수타령과 난봉가를 부르는 15분짜리 영상을 찾아보시라.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는 요요마와 콜드플레이, 아델 등 세계 정상 음악가가 거쳐 간 라이브 무대. 이씨와 씽씽밴드가 한국인으론 처음 나오고 나서 3년 뒤 BTS가, 또 4년 뒤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출연했다.
이희문(가운데)과 씽씽밴드가 2017년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전미공공라디오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나와 재즈 크로스오버 민요 공연을 하는 모습. 세계에 ‘민요 힙’을 퍼뜨린 계기다. /NPR 유튜브
-당시 ‘쇼킹할 정도로 천재적’ ‘전통의 창조적 파괴자’ ‘B급인 척하는 S급’이란 반응이 쏟아졌죠. 8년이 지난 지금도 찾아보는 팬들이 있더군요. 조회 수가 900만뷰에 육박하고요.
“뉴욕 투어 중 갑자기 초청돼 워싱턴까지 4시간 기차 타고 가서 불렀어요. 주최 측이 ‘우리가 보고 들은 그 어떤 밴드와도 다르다’고 소개했어요. 방송 8분 만에 제 공연 티켓이 매진되고, 외국 관객이 민요 후렴구를 떼창하는 걸 보니 좀 무서울 정도였어요.”
-그때 국악의 폭발적 대중성과 세계화 가능성을 본 씽씽밴드 장영규·이철희씨가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이날치밴드를 결성했지요.
“국악 시장은 여전히 작아요. 뭐, 문화 예술 분야 중 몇 개 빼곤 다 똑같이 어렵죠. 그래도 전통음악 분야 스타들이 계속 나오니 희망이 있어요.”
-국악 크로스오버(crossover·다양한 장르를 결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는 3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시도돼 왔지요. 이 감독은 크로스오버로 인기를 얻고서도 전통 공연을 병행하더군요.
“맞아요. 씽싱밴드와는 별도로 1인 기업 이희문컴퍼니를 세워 계속 투 트랙으로 해왔어요. 재즈·팝·댄스·록·블루스·지르박·발라드를 민요와 융합한 ‘오방신과 스팽글’ 같은 공연도 하고, 옛 소리꾼들의 공연 환경을 고증한 ‘깊은 사랑(舍廊)’이나 ‘프로젝트 요(謠)’ 같은 전통 공연도 번갈아 올리죠.”
움을 파고 사랑방을 지어 깊은 놀음에 심취한 조선 후기 중인들의 문화를 재현한 ‘깊은 사랑' 시리즈에서 장구만 놓고 간결하게 소리를 뽑는 이희문. "크로스오버 공연을 할 때와는 달리 누구보다 올곧게 충실한 정통 민요를 선보인다"고./조선일보DB
-왜 그렇게 하지요?
“전통 소리만으로는 무대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거든요. 민요 저변을 넓히려면 힘들어도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해요. 아무리 화려한 크로스오버를 해도 전통 공연에 다시 욕심이 생겨요. 전 어쨌든 경기민요 소리꾼이니까요.”
-크로스오버와 전통 사이에 쉽게 모드 전환이 됩니까?
“옷이나 악기 바뀐다고 제 소리가 바뀌진 않으니까요. 기본에 충실하면 소리가 무너지지 않죠. 자기 중심이 잡혀 있으면 어떤 장르와 섞여도 흔들리거나 끌려가지 않아요.”
-관객 분위기는 서로 다를 듯한데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제 크로스오버 공연에서 신나게 춤춘 관객들이 ‘난 이희문이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게 좋아’ 하면서 전통 공연 보러 와서도 흥겹게 노니까요.”
독보적 예술가를 키워낸 여인들
이희문은 정통 경기민요의 마지막 전성기인 1970~1980년대를 풍미한 고주랑 명창의 외동아들이다. 1975년 경기민요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다음 해에 태어났다. 첫돌 때 인간문화재 안비취·묵계월 명인이 잔칫상을 봐줬다.
그는 국내외 공연으로 바쁜 어머니 대신 외할머니 손에 크다시피 했다. 어머니의 레코드판을 틀어놓고 가락을 따라 흥얼거리고, 어머니 한복을 끌어안고 장롱 안에 들어가 자곤 했다고.
소리꾼 이희문이 어린 시절 경기민요 명인인 어머니 고주랑 명창과 함께 한 모습. 정작 소리는 27세 때 어머니 친구인 이춘희 명창의 권유로 입문했다. /이희문 제공
-민요 ‘금수저’네요.
“그런데 정작 저는 국악 하겠다는 생각을 스물일곱 살까지 해본 적이 없어요. 동물자원학과 다니다 민해경의 백댄서, 뮤직비디오 감독을 꿈꿨죠. 제게 처음 ‘소리해볼래?’ 제안한 사람은 어머니 친구인 이춘희 명창이었어요. 그분께 배웠죠. 어머니는 당시 민요 하면 기생이라는 시선 때문에 아들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늦깎이로 입문했군요.
“배운 지 두 달 만에 전국 대회에서 2등을 했어요. 그 뒤 국악과에 들어갔습니다. 입문 7년 만인 2010년 전국 민요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탔고요. 더 받을 상이 없었죠. 그렇게 첫 10년은 올곧게 전통 소리만 하다, 조금씩 제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로스오버에 뛰어든 계기는요?
“현대무용가 안은미 선생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젊은 남자 소리꾼이 좀 튀니까 좁은 국악계에서 말이 나와서 위축돼 있었어요. 그런데 안 선생님이 바리데기 설화를 소재로 한 크로스오버 작품에 저를 주인공으로 세웠어요. 늘 칭찬하고 격려해주셨죠. 음악에 미술과 패션, 춤을 하나로 다루는 눈도 그때 키웠고요.”
이희문은 국악과 타 음악 장르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 패션과 무대미술, 댄스 등 모든 예술 분야를 하나의 눈으로 능란하게 다룬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퓨전이 흔해진 시대입니다. 장르를 융합할 때 중요한 게 뭡니까?
“우선 내 기술과 기본이 정립돼 있어야 해요. 예컨대 국악은 3박, 서양 음악은 4박이 기본입니다. 그걸 섞으려면 리듬의 격차를 메워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불규칙하게 생겨난 무수한 미분 음을 오가는 ‘시김새(장식음)’를 뛰어나게 구사해야 해요. 그건 음반 작업할 때 AI로도 튜닝(조정)이 안 돼요. 오직 소리꾼의 완벽한 테크닉으로 해결해야 하죠.”
-기본이 부족한데 파격과 융합부터 추구하면 어떻게 되나요?
“메이저, 센터로는 절대 못 들어오지요(웃음).”
-어떤 분야든 기본에 충실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기본을 닦는다는 건 그 업(業)에 필요한 성품과 예의, 인내심을 배우는 거지요. 요즘 후배들 보면 마음이 급하더라고요. 하지만 기회가 오는 시기는 사람마다 달라요.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만의 때를 기다리는 것, 그게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잡’스러운 것이 한국의 힘
-목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까슬까슬한 게, 비단과 삼베를 섞은 듯 묘합니다.
“그런가요? 제가 목이 타고나진 못했어요. 고음 내는 법도 스승님 아닌 대중음악 보컬 트레이너한테 따로 배웠습니다. 소리꾼마다 목소리는 매우 다양해요. 다만 제가 어릴 때부터 마돈나, 마이클 잭슨 같은 가창력 있는 댄스 가수를 좋아하다 보니, 민요에서도 빠른 박자의 곡을 즐겨 불렀고 그게 요즘 시대와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경기민요는 소리가 동그랗고 맑아 여성스럽지요. 여성들이 주로 불렀고요.
“원래 경기민요는 남자가 했어요. 양반들이 읊던 가사·시조·가곡을, 조선 후기 서울 사대문 밖에서 장사로 돈을 번 중인들도 풍류를 즐기려 따라 한 거예요. 그러다 청파·만리동 일대 ‘사계축’에 모인 젊은 민요 소리꾼들이 홍대 인디밴드처럼 모여 목청 뽐내며 발전시킨 게 경기잡가고요. 템포는 사람 사는 속도에 비례해요. 양반 음악이 점점 빨라졌죠. 그런데 일제 시대 권번(券番·기생조합) 문화가 들어오면서 아이돌 기획사처럼 기생들을 문화 상품으로 만들다 보니 민요가 여성화됐습니다.”
이희문이 2023년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열린 ‘서울스테이지11’ 공연에서 크로스오버 프로젝트인 '오방신과 스팽글'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오방신과..'는 올해도 계속된다. /뉴스1
-민요가 대중 속에서 계속 변신했군요. 어랑타령을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섞거나, 정선아리랑을 록 밴드와 매치해도 멋진 게 그 때문인가요?
“민요 자체가 잡(雜)스러우니까요. ‘잡’이 붙으면 천해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되게 멋있는 말입니다. 잘 섞인다,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고, 어떤 카테고리로 규격화하기 어렵다, 새로운 길을 간다, 크로스오버를 추구하기 쉽다는 얘기거든요.”
-‘잡 철학’이네요.
“우리는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외래문화가 많이 섞인 비빔밥 문화라고 하잖아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 융합)을 빨리 잘하죠. 지금 제가 하는 음악을 남들은 파격이라고 하지만, 그게 민요의 속성이에요.”
당대의 힙이 전통이 된다
-과거만 답습하는 건 진짜 민요가 아니다?
“전통은 시대와 함께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당대에 가장 힙(hip·첨단 유행에 밝은)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잖아요. 그런데 현재를 사는 사람이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고 박제된 옛것만 ‘복붙’하고 있으면 전통이 이어질까요?”
-국악인은 인간문화재 되는 게 목표 아닌가요?
“저는 준다고 해도 안 받을 거예요. 족쇄가 될 거 같아서요.”
-왜요?
“그게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일본 제도를 벤치마킹한 거예요. 초기엔 소리꾼이 인간문화재가 되면 집안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소리를 더 열심히 했죠. 그런데 점점 보존의 측면이 강해지면서 현역에서 물러나 활동을 못 하는 분들이 받는 공로상처럼 됐어요.”
-작년부터 6월 5일이 ‘국악의 날’로 지정됐는데요.
“저더러 한마디 하라기에 ‘슬프다’고 했어요. 그만큼 국악이 사라져가고 지켜줘야 하는 대상이 됐다는 거잖아요.”
-지난해 런던재즈페스티벌에선 당신 공연을 ‘사이키델릭 네오-민요 마스터피스(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민요 걸작)’라고 소개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얼쑤’ 같은 추임새를 따라 했고요. 전통 음악으로 해외 공연할 때 언어나 문화 장벽이 느껴지진 않나요?
“우리는 감정 표현에 인색하잖아요. 오히려 외국 가면 스위치가 하나 더 켜지는 것 같아요.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관객과 주고받기가 쉬워져요. 사람의 감정과 고민은 서로 비슷해요. 거기에 노래까지 얹으면 언어 전달은 미흡해도 상관없죠.”
소리꾼 이희문은 여장이나 파격적인 패션과 퍼포먼스를 펼치는 데 대해 "배우가 역할에 맞는 옷을 입고 분장하는 것과 같을 뿐"이라고 했다. "하이힐을 신으면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을 때와는 다른 소리가 나온다"고.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내 인생, 버릴 게 없더라
-한국의 레이디 가가, 데이비드 보위라고 불릴 만큼 여장(女裝)이나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로도 유명합니다.
“새로운 음악을 하려면 새로운 비주얼과 명분이 필요하지요. 가끔 여장을 하는 건 여성성이 예술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기가 훨씬 좋아서예요. 하이힐 신고 긴 가발을 쓰면 갓에 두루마기 입었을 때와는 다른 소리가 나오죠. 제 안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면을 끌어내는 거예요.”
-어머니인 고 명창은 뭐라고 하세요?
“어머니는 단정한 한복에 머리 틀어 올리고 올곧게 소리만 하시던 분이죠. 제가 반짝이 옷에 망사 스타킹 신고 소리하는 걸 처음 보셨을 땐 대성통곡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제일 든든한 후원자죠.”
-공연에서 본인의 성장 환경, 소리꾼으로서의 고민 등을 많이 이야기하더군요.
“같이 협업하는 아티스트나 관객에게 저 자신을 홀딱 벗어서 보여주는 편이에요. 무슨 척이나 연기는 못 하죠. 무대 위에서 제 결핍을 쏟아내면서 자신을 치유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제가 관객들에게 돈을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웃음).”
-어떤 결핍을 풀어냅니까.
“가장 큰 게 아버지의 부재였죠. 이미 일본인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재일교포가 어머니를 만나 절 낳았어요. 서울엔 가끔 들러 보고 갔으니 잘 기억도 안 나요. 성장하는 내내 ‘왜 나는?’ 하며 아버지를 원망하고, 어머니도 원망해봤죠. 방황을 오래 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런 인생 경험들이 하나도 버릴 게 없더라고요. 모든 게 제가 하는 예술의 원천이 됐으니까요.”
-앞으로 또 어떤 파격을 추구할 건가요.
“제 응어리는 소리를 하면서 많이 풀어냈어요. 나중에 이 모든 분장을 다 지우고 오로지 소리의 기본으로 돌아가 승부하게 된다면, 그게 저로선 최후의 파격일 겁니다.”
옛것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키워내기는 더욱 어렵다. 이런 때는 가진 걸 움켜쥐고 버티거나, 검증된 길을 답습하려 몰려들거나, 이도 저도 안 되면 빼앗아 나눠 갖자는 발상이 난무한다. 모두가 패배한다.
답답한 이들에게 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민요 이수자 이희문(49)은 하나의 영감이 될지 모른다. 요즘 국악계의 흥 신한카드 연체 행 치트키(cheat key·게임 진행을 도와주는 명령어)로 불리는 인물. 10여 년 전부터 민요를 기반으로 여러 음악 장르를 섞고 파격적인 연출을 더해 국악계를 뒤집어놨다. 외국에서도 “세상 어디에도 없던 소리”(미국 NPR) “엄청나게 재미있다”(영국 가디언)는 찬사 속에 팬덤을 일으키면서 민요는 물론 한국 음악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 예금담보대출이자계산 가 단독이든 게스트로든 출연하는 국내외 공연은 매진 행렬이다. 쪼그라든 국악판, 그중에서도 판소리·사물놀이에 밀려 명맥을 잇기 어려웠던 경기민요는 이희문의 등장 이후 화려하게 부활했고, 차세대 스타들이 계속 나와 해외 진출 문을 두드린다. “이희문이 국악의 글로벌 스탠더드”(윤중강 평론가)라는 평도 나온다.
그에게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우리은행생애최초대출 비결을 물었다. ‘기본’이란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기본에 충실한 게 제일 중요해요. 기본, 그러니까 격(格)이 떨어지면 내 것을 지키는 것도 남을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해지거든요.”
국악계의 흥행 보증 수표
지금 이씨는 국립극장의 여름 국악 축제인 ‘2025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올해는 ‘민요의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장 사퇴 재발견’을 주제로 이달 4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국악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던 여우락이 이처럼 특정 분야만 다루는 것은 창설 16년 만에 처음이다.
이희문 예술감독은 4일 개막한 2025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쇼케이스 및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양쪽에 가수 보험설계사급여압류 인순이와 스승인 인간문화재 이춘희 명창. /연합뉴스
-출연진이 화려하던데요.
“가수 최백호가 청춘가와 몽금포타령을, 인순이가 서도소리 대가 유지숙 명창과 함께 수심가를 부릅니다. 재즈가수 웅산, 댄스가수 민해경, 뮤지컬 배우 아이비, 소리꾼 박애리, 힙합 듀오 마이티마우스와 인디밴드 까데호 등이 각 지방 민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선보일 거예요. 아마추어 여성 33명이 민요 합창도 하고, 젊은 남자 소리꾼들과 제 스승인 인간문화재 이춘희 명창이 정통 민요를 들려줄 겁니다. 출연진이 200여 명으로 역대 최다라고 해요.”
-그런 분들을 민요란 키워드로 모아 한 달간 축제를 한다니. 민요의 위상이 그 정도인가요?
“제가 여러 장르를 넘나들다 보니 친한 분이 많아요. 인순이씨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분인데 제 민요 공연에 찾아오셔서 교류하게 됐어요. 웅산씨도 제 분장실에 ‘나 팬이에요’라며 들어와 만난 게 시작이고요. 그런 분들을 잘 어울리겠다 싶은 소리꾼이나 연주자들과 하나하나 매칭해 무대를 기획했습니다.”
-이희문의 힘이군요.
“이런 대형 축제를 총괄하는 감투는 처음이라 감독 제안이 왔을 때 망설였어요. 고민 끝에 ‘제가 그간 민요를 다양하게 실험했던 경험치를 담아내고 싶다’고 역제안했더니 국립극장이 오케이했고요. 전통도 양식만 바꾸면 얼마든지 즐기며 들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겁니다. 그런데 감투 써보니까 그리 신나지만은 않더라고요. 저답지 않게 조심스러워져서요(웃음).”
세상에 없던 소리, 세계가 놀랐다
21세기에 ‘민요로 신나게 논다’는 게 뭔지 궁금하면 이희문이 소리하는 모습을 보면 된다. 그가 2017년 국악 퓨전 그룹 씽씽밴드와 함께 미 워싱턴 DC에서 전미공공라디오(NPR)가 연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 나와 드럼과 베이스 반주에 맞춰 빨간 펑키헤어를 낭창낭창 흔들며 베틀가·오봉산타령·한강수타령과 난봉가를 부르는 15분짜리 영상을 찾아보시라.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는 요요마와 콜드플레이, 아델 등 세계 정상 음악가가 거쳐 간 라이브 무대. 이씨와 씽씽밴드가 한국인으론 처음 나오고 나서 3년 뒤 BTS가, 또 4년 뒤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출연했다.
이희문(가운데)과 씽씽밴드가 2017년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전미공공라디오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나와 재즈 크로스오버 민요 공연을 하는 모습. 세계에 ‘민요 힙’을 퍼뜨린 계기다. /NPR 유튜브
-당시 ‘쇼킹할 정도로 천재적’ ‘전통의 창조적 파괴자’ ‘B급인 척하는 S급’이란 반응이 쏟아졌죠. 8년이 지난 지금도 찾아보는 팬들이 있더군요. 조회 수가 900만뷰에 육박하고요.
“뉴욕 투어 중 갑자기 초청돼 워싱턴까지 4시간 기차 타고 가서 불렀어요. 주최 측이 ‘우리가 보고 들은 그 어떤 밴드와도 다르다’고 소개했어요. 방송 8분 만에 제 공연 티켓이 매진되고, 외국 관객이 민요 후렴구를 떼창하는 걸 보니 좀 무서울 정도였어요.”
-그때 국악의 폭발적 대중성과 세계화 가능성을 본 씽씽밴드 장영규·이철희씨가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이날치밴드를 결성했지요.
“국악 시장은 여전히 작아요. 뭐, 문화 예술 분야 중 몇 개 빼곤 다 똑같이 어렵죠. 그래도 전통음악 분야 스타들이 계속 나오니 희망이 있어요.”
-국악 크로스오버(crossover·다양한 장르를 결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는 3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시도돼 왔지요. 이 감독은 크로스오버로 인기를 얻고서도 전통 공연을 병행하더군요.
“맞아요. 씽싱밴드와는 별도로 1인 기업 이희문컴퍼니를 세워 계속 투 트랙으로 해왔어요. 재즈·팝·댄스·록·블루스·지르박·발라드를 민요와 융합한 ‘오방신과 스팽글’ 같은 공연도 하고, 옛 소리꾼들의 공연 환경을 고증한 ‘깊은 사랑(舍廊)’이나 ‘프로젝트 요(謠)’ 같은 전통 공연도 번갈아 올리죠.”
움을 파고 사랑방을 지어 깊은 놀음에 심취한 조선 후기 중인들의 문화를 재현한 ‘깊은 사랑' 시리즈에서 장구만 놓고 간결하게 소리를 뽑는 이희문. "크로스오버 공연을 할 때와는 달리 누구보다 올곧게 충실한 정통 민요를 선보인다"고./조선일보DB
-왜 그렇게 하지요?
“전통 소리만으로는 무대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거든요. 민요 저변을 넓히려면 힘들어도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해요. 아무리 화려한 크로스오버를 해도 전통 공연에 다시 욕심이 생겨요. 전 어쨌든 경기민요 소리꾼이니까요.”
-크로스오버와 전통 사이에 쉽게 모드 전환이 됩니까?
“옷이나 악기 바뀐다고 제 소리가 바뀌진 않으니까요. 기본에 충실하면 소리가 무너지지 않죠. 자기 중심이 잡혀 있으면 어떤 장르와 섞여도 흔들리거나 끌려가지 않아요.”
-관객 분위기는 서로 다를 듯한데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제 크로스오버 공연에서 신나게 춤춘 관객들이 ‘난 이희문이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게 좋아’ 하면서 전통 공연 보러 와서도 흥겹게 노니까요.”
독보적 예술가를 키워낸 여인들
이희문은 정통 경기민요의 마지막 전성기인 1970~1980년대를 풍미한 고주랑 명창의 외동아들이다. 1975년 경기민요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다음 해에 태어났다. 첫돌 때 인간문화재 안비취·묵계월 명인이 잔칫상을 봐줬다.
그는 국내외 공연으로 바쁜 어머니 대신 외할머니 손에 크다시피 했다. 어머니의 레코드판을 틀어놓고 가락을 따라 흥얼거리고, 어머니 한복을 끌어안고 장롱 안에 들어가 자곤 했다고.
소리꾼 이희문이 어린 시절 경기민요 명인인 어머니 고주랑 명창과 함께 한 모습. 정작 소리는 27세 때 어머니 친구인 이춘희 명창의 권유로 입문했다. /이희문 제공
-민요 ‘금수저’네요.
“그런데 정작 저는 국악 하겠다는 생각을 스물일곱 살까지 해본 적이 없어요. 동물자원학과 다니다 민해경의 백댄서, 뮤직비디오 감독을 꿈꿨죠. 제게 처음 ‘소리해볼래?’ 제안한 사람은 어머니 친구인 이춘희 명창이었어요. 그분께 배웠죠. 어머니는 당시 민요 하면 기생이라는 시선 때문에 아들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늦깎이로 입문했군요.
“배운 지 두 달 만에 전국 대회에서 2등을 했어요. 그 뒤 국악과에 들어갔습니다. 입문 7년 만인 2010년 전국 민요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탔고요. 더 받을 상이 없었죠. 그렇게 첫 10년은 올곧게 전통 소리만 하다, 조금씩 제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로스오버에 뛰어든 계기는요?
“현대무용가 안은미 선생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젊은 남자 소리꾼이 좀 튀니까 좁은 국악계에서 말이 나와서 위축돼 있었어요. 그런데 안 선생님이 바리데기 설화를 소재로 한 크로스오버 작품에 저를 주인공으로 세웠어요. 늘 칭찬하고 격려해주셨죠. 음악에 미술과 패션, 춤을 하나로 다루는 눈도 그때 키웠고요.”
이희문은 국악과 타 음악 장르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 패션과 무대미술, 댄스 등 모든 예술 분야를 하나의 눈으로 능란하게 다룬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퓨전이 흔해진 시대입니다. 장르를 융합할 때 중요한 게 뭡니까?
“우선 내 기술과 기본이 정립돼 있어야 해요. 예컨대 국악은 3박, 서양 음악은 4박이 기본입니다. 그걸 섞으려면 리듬의 격차를 메워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불규칙하게 생겨난 무수한 미분 음을 오가는 ‘시김새(장식음)’를 뛰어나게 구사해야 해요. 그건 음반 작업할 때 AI로도 튜닝(조정)이 안 돼요. 오직 소리꾼의 완벽한 테크닉으로 해결해야 하죠.”
-기본이 부족한데 파격과 융합부터 추구하면 어떻게 되나요?
“메이저, 센터로는 절대 못 들어오지요(웃음).”
-어떤 분야든 기본에 충실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기본을 닦는다는 건 그 업(業)에 필요한 성품과 예의, 인내심을 배우는 거지요. 요즘 후배들 보면 마음이 급하더라고요. 하지만 기회가 오는 시기는 사람마다 달라요.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만의 때를 기다리는 것, 그게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잡’스러운 것이 한국의 힘
-목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까슬까슬한 게, 비단과 삼베를 섞은 듯 묘합니다.
“그런가요? 제가 목이 타고나진 못했어요. 고음 내는 법도 스승님 아닌 대중음악 보컬 트레이너한테 따로 배웠습니다. 소리꾼마다 목소리는 매우 다양해요. 다만 제가 어릴 때부터 마돈나, 마이클 잭슨 같은 가창력 있는 댄스 가수를 좋아하다 보니, 민요에서도 빠른 박자의 곡을 즐겨 불렀고 그게 요즘 시대와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경기민요는 소리가 동그랗고 맑아 여성스럽지요. 여성들이 주로 불렀고요.
“원래 경기민요는 남자가 했어요. 양반들이 읊던 가사·시조·가곡을, 조선 후기 서울 사대문 밖에서 장사로 돈을 번 중인들도 풍류를 즐기려 따라 한 거예요. 그러다 청파·만리동 일대 ‘사계축’에 모인 젊은 민요 소리꾼들이 홍대 인디밴드처럼 모여 목청 뽐내며 발전시킨 게 경기잡가고요. 템포는 사람 사는 속도에 비례해요. 양반 음악이 점점 빨라졌죠. 그런데 일제 시대 권번(券番·기생조합) 문화가 들어오면서 아이돌 기획사처럼 기생들을 문화 상품으로 만들다 보니 민요가 여성화됐습니다.”
이희문이 2023년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열린 ‘서울스테이지11’ 공연에서 크로스오버 프로젝트인 '오방신과 스팽글'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오방신과..'는 올해도 계속된다. /뉴스1
-민요가 대중 속에서 계속 변신했군요. 어랑타령을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섞거나, 정선아리랑을 록 밴드와 매치해도 멋진 게 그 때문인가요?
“민요 자체가 잡(雜)스러우니까요. ‘잡’이 붙으면 천해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되게 멋있는 말입니다. 잘 섞인다,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고, 어떤 카테고리로 규격화하기 어렵다, 새로운 길을 간다, 크로스오버를 추구하기 쉽다는 얘기거든요.”
-‘잡 철학’이네요.
“우리는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외래문화가 많이 섞인 비빔밥 문화라고 하잖아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 융합)을 빨리 잘하죠. 지금 제가 하는 음악을 남들은 파격이라고 하지만, 그게 민요의 속성이에요.”
당대의 힙이 전통이 된다
-과거만 답습하는 건 진짜 민요가 아니다?
“전통은 시대와 함께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당대에 가장 힙(hip·첨단 유행에 밝은)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잖아요. 그런데 현재를 사는 사람이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고 박제된 옛것만 ‘복붙’하고 있으면 전통이 이어질까요?”
-국악인은 인간문화재 되는 게 목표 아닌가요?
“저는 준다고 해도 안 받을 거예요. 족쇄가 될 거 같아서요.”
-왜요?
“그게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일본 제도를 벤치마킹한 거예요. 초기엔 소리꾼이 인간문화재가 되면 집안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소리를 더 열심히 했죠. 그런데 점점 보존의 측면이 강해지면서 현역에서 물러나 활동을 못 하는 분들이 받는 공로상처럼 됐어요.”
-작년부터 6월 5일이 ‘국악의 날’로 지정됐는데요.
“저더러 한마디 하라기에 ‘슬프다’고 했어요. 그만큼 국악이 사라져가고 지켜줘야 하는 대상이 됐다는 거잖아요.”
-지난해 런던재즈페스티벌에선 당신 공연을 ‘사이키델릭 네오-민요 마스터피스(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민요 걸작)’라고 소개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얼쑤’ 같은 추임새를 따라 했고요. 전통 음악으로 해외 공연할 때 언어나 문화 장벽이 느껴지진 않나요?
“우리는 감정 표현에 인색하잖아요. 오히려 외국 가면 스위치가 하나 더 켜지는 것 같아요.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관객과 주고받기가 쉬워져요. 사람의 감정과 고민은 서로 비슷해요. 거기에 노래까지 얹으면 언어 전달은 미흡해도 상관없죠.”
소리꾼 이희문은 여장이나 파격적인 패션과 퍼포먼스를 펼치는 데 대해 "배우가 역할에 맞는 옷을 입고 분장하는 것과 같을 뿐"이라고 했다. "하이힐을 신으면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을 때와는 다른 소리가 나온다"고.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내 인생, 버릴 게 없더라
-한국의 레이디 가가, 데이비드 보위라고 불릴 만큼 여장(女裝)이나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로도 유명합니다.
“새로운 음악을 하려면 새로운 비주얼과 명분이 필요하지요. 가끔 여장을 하는 건 여성성이 예술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기가 훨씬 좋아서예요. 하이힐 신고 긴 가발을 쓰면 갓에 두루마기 입었을 때와는 다른 소리가 나오죠. 제 안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면을 끌어내는 거예요.”
-어머니인 고 명창은 뭐라고 하세요?
“어머니는 단정한 한복에 머리 틀어 올리고 올곧게 소리만 하시던 분이죠. 제가 반짝이 옷에 망사 스타킹 신고 소리하는 걸 처음 보셨을 땐 대성통곡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제일 든든한 후원자죠.”
-공연에서 본인의 성장 환경, 소리꾼으로서의 고민 등을 많이 이야기하더군요.
“같이 협업하는 아티스트나 관객에게 저 자신을 홀딱 벗어서 보여주는 편이에요. 무슨 척이나 연기는 못 하죠. 무대 위에서 제 결핍을 쏟아내면서 자신을 치유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제가 관객들에게 돈을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웃음).”
-어떤 결핍을 풀어냅니까.
“가장 큰 게 아버지의 부재였죠. 이미 일본인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재일교포가 어머니를 만나 절 낳았어요. 서울엔 가끔 들러 보고 갔으니 잘 기억도 안 나요. 성장하는 내내 ‘왜 나는?’ 하며 아버지를 원망하고, 어머니도 원망해봤죠. 방황을 오래 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런 인생 경험들이 하나도 버릴 게 없더라고요. 모든 게 제가 하는 예술의 원천이 됐으니까요.”
-앞으로 또 어떤 파격을 추구할 건가요.
“제 응어리는 소리를 하면서 많이 풀어냈어요. 나중에 이 모든 분장을 다 지우고 오로지 소리의 기본으로 돌아가 승부하게 된다면, 그게 저로선 최후의 파격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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