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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남수래 작성일25-08-10 13:32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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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하기 5년 전인 2015년 민청련동지회 활동에 참여할 당시의 백완승


ⓒ 민청련동지회




백완승 하면 생전에 그들 알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인상이 있다. 역도 선수를 연상시키는 넉넉한 풍채에, 부리부리한 눈과 두툼한 입술, 그리고 우렁우렁한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외모에 국민은행 예금 대한 이러한 기억으로 그의 일생 전체를 연상하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일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적다. 그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할 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최정순(이화여대 75학번)은 재수할 당시만 해도 그가 날씬한 편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면서 그의 부은 듯한 모습이 1979년과 1980년 두 차례에 걸쳐 성북경찰서에서 당한 모진 고문의 후 자동차유지비절약방법 유증의 결과로 추측했다.

'잠수 타느니 데모 주동하겠다'
1979년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재학 중 그는 교내 시위를 주동했고, 성북경찰서로 연행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왜 그토록 고문을 받아야 했던 것일까.
1979년 초 백완승은 경찰의 수배를 받아 도피 중이었다. 그는 서울 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야학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야학을 지도하던 서울대 출신 선배 이목희(서울대 71학번. 17대, 19대 국회의원 역임)로부터 급히 도피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아마도 어떤 계기로 야학 모임이 수사기관에 포착돼 조사를 받게 된 모양이었지만, 백완승은 영문도 모르고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학자금 저금리 스스로 결단한 어떤 실천 행위도 없이 무작정 '잠수를 타는' 것은 힘이 들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5월 무렵에 고려대 운동권의 대선배인 조성우(고려대 68학번)를 만난다. 이때 둘이 나눈 대화는 이러했다.
"너 왜 계속 잠수 타냐?""야학을 하던 중 사고가 나서 좀 장기 고려저축은행다이렉트론 잠수를 타야 할 것 같은데 답답합니다.""도망 다니는 건 데모 주동하는 것보다 더 힘들 걸.""솔직히 그렇습니다.""그런데, 이번에 카터가 입국하는데 누군가 하나 떠 줬으면(데모를 주동해 줬으면) 좋겠는데, 뜰 만한 놈들은 다 바닥이 나버려서 말이야."
당시 고려대에서는 1978년 9월에 학내 시위가 크게 일어난 뒤 성북경창서의 사찰이 극심해져 있었다. 웬만큼 알려진 운동권은 수사관과 1대 1로 감시체제가 가동되었고, 수사기관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른바 '예비검속'을 통해 운동권 학생이 시위를 주동하기 이전에 학교와 학생들로부터 분리시켰다. 조성우는 이런 학내 사정을 토로한 것이었다. 백완승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한때 고대 학생운동 선배인 설훈과 말다툼을 하면서 "데모 주동은 못 하고 맨날 예비검속이나 당하는 주제에!"라며 대든 적도 있었다.
조성우는 말하자면 백완승에게 고대에서 데모를 주동해 시위를 크게 일으켜보라고 권유한 것이었다. 백완승은 의로운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는 품성이었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운동은 몰라, 그저 정 많고 퍼주기 좋아하는 사람
백완승이 원래부터 진보나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백희수는 전라북도 무주가 고향으로 해방 직후와 이승만 정권 때 경찰서장을 역임한 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유학했고 귀국해서 교사를 했었다. 해방 정국에서 좌우 갈등이 심해지고 한때 좌익으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경찰전문대 모집 공고가 나자 아예 경찰이 되어 그런 의심에서 벗어나고자 지원했고 합격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경찰이 되고 나서도 자유당이나 우익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렇다고 좌익에 속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의 인품에 감명을 받아 신익희를 지지하게 되었고, 경호를 맡기도 했다. 5.16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이것이 문제가 되자 미련 없이 경찰서장직을 던지고 나왔다.

백완승은 1957년 전북 무주군 설천면에서 태어났다. 백희수는 셋째 딸 완승을 유난히 예뻐했고, 백완승 또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따라서 백완승의 품성과 기질은 아마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을 듯하다.










▲  서울 사대부고 재학 시절의 백완승(왼쪽)


ⓒ 민청련동지회




백완승이 초등학교 5학면 때, 경찰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쫄딱 망한다. 학비를 댈 여력마저 없어져 초등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그러나 억센 운명이 닥쳐올수록 정면으로 들이받고 치고나가는 기질은 이때부터 드러났다. 못 다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돌파하고 서울로 올라와 서울대 사범대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1976년에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하여 합격한다. 이때 그와 친하게 지냈던 최정순은 당시 백완승은 정치정세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마음이 맞는 사람에게 뭐든 퍼줄 정도로 마음씨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가세가 다시 일어서서 집안 형편이 좋아졌는데,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먹이고 재우고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백완승은 목소리가 좋아서 웅변을 잘 했는데, 학창시절 반공웅변대회에도 곧잘 나갔다.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경찰서에서 운영하는 빈민야학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당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야학을 한다면 공단 인근에서 노동야학을 하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그가 대학 2학년 때 주변의 권유로 서울 가리봉동 공단 지역의 노동야학으로 옮긴 건 그가 신뢰하던 동료와 선배들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백완승은 천성이 이론이나 이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리와 정의감이 행동의 기준인 사람이었다.










▲  대학생 시절 서울 가리봉동에서 야학 활동을 하던 시절, 야학 노동자들과 함께. 아래 앉은 사람이 백완승


ⓒ 민청련동지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백완승

백완승은 조성우 선배의 권유를 받아들여 시위를 주동하기로 했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같이 할 동료를 구하는 것, 또한 몇 개월 동안 도피 중이어서 학내와 연결이 끊겨 있어 연결선을 찾는 것이 문제였다.
우선 데모를 주동할 동료로서 한 학번 아래인 77학번 후배 박선오를 소개받았다. 당시 박선오 역시 수배 중이어서 도피하고 있었다. 수배 사유는 그해 3월에 있었던 '페인트 사건'이었다. 3월에 이명식(76학번) 등이 데모를 시도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났다. 그러자 박선오는 야간에 학교에 잠입하여 강의실과 건물 벽면에 페인트로 반정부 구호를 쓴 뒤 빠져나오는 작전을 구상했다.
박선오는 계획대로 야간에 벽 곳곳에 "유신 타도" "긴조(긴급조치) 철폐" 등 구호를 쓰고 빠져나왔는데, 안타깝게도 페인트 통이 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학교에서 그가 도피한 친구 집까지 붉은 페인트가 줄줄이 도로에 흐른 것이었다. 잔혹동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도 아니고... 이 일로 박선오는 정체가 드러나서 도망자 신세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데모 주동은 백완승과 박선오로 정해졌다. 다음은 학내 연결선. 이경재(77학번). 전성(77학번), 박일남(78학번)이 나섰다. 현장에서 데모 주동은 백완승, 박선오가 하고, 나머지는 학생들을 동원하고 사전에 유인물을 배포해 분위기를 조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동자 두 사람 이외에는 경찰 조사에서 철저하게 함구해 보호할 것이었다.
디 데이는 6월 25일로 정해졌다. 나중에 성북경찰서 수사관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 날짜를 트집 잡아서 '빨갱이들'이라며 몰아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뿌린 유인물에는 '카터 미국 대통령 방한 반대' 즉, 반미 구호가 적혀 있기도 했다. 시위에서 뿌린, "고대 학우여 궐기하라!"라는 제목의 '6월 민족선언문'은 먼저 박정희 유신독재를 비판하고, 박 정권의 노동착취와 노동운동탄압을 큐탄했다. 아울러 다가올 카터의 방한이 그가 주장해온 '인권외교'와는 상반되게 박정희 유신체제를 인정하고 지지할 것에 대해 우려하며 그의 방한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일부러 한국전쟁 발발일로 정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데모를 계획했을 당시 학교는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시일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연하게 날짜를 6월 25일로 잡은 것 뿐이었다.
데모를 준비하는 방식을 보면 백완승이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데모를 주동하고 경찰서에 잡혀가면 우선 배후를 캐는 조사가 혹독하게 진행될 것이었다. 백완승은 그 단서는 돈과 장소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어느 누구의 금전적 도움도 장소 제공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우선 돈 문제는 자신이 갖고 있던 고급 카메라를 전당포에 맡겨 마련했다. 당시 백완승은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고 취재를 위해 자비로 고급 카메라를 사서 갖고 다녔었다. 다음으로 시위를 준비할 장소는 친구나 선후배의 자취방 같은 곳은 피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홍대입구에 있는 서교장 호텔이란 곳에 박선오와 신혼부부로 가장하여 투숙하는 방안이었다.

마련한 돈으로 가리방(등사기)과 광목 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호텔 방에서 가리방으로 유인물을 찍고, 광목으로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사온 광목이 부족하자 침대 시트를 찢어서 플래카드를 만들기도 했다. 박선오는 당시 백완승에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1979년 6월 25일 백완승이 주동한 시위 벌어지고 있는 고려대 교정 모습


ⓒ 고려대학교민주동우회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으나 시위 현장에서 몇 가지가 틀어졌다. 원래 드러나지 않기로 한 사람이 현장에서 검거되기도 했고, 배포하기로 한 유인물을 가방에 둔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백완승, 박선오 두 사람 이외엔 관련자가 없다는 식으로 입을 맞추어 진술하자 수사관들이 거짓말을 한다며 배후를 대라는 가혹한 고문이 시작됐다.

의리로 고문을 버텨내다
당시 서울시내 각 경찰서 중에서 성북경찰서는 학생운동에 대해 악랄하게 수사하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백완승과 박선오는 7월 중순 기소될 때까지 20여 일 동안 성북경찰서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다. 하루에 너댓 시간은 일상처럼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손을 뒤로 해서 수갑을 채운 뒤 공중에 매다는 고문, 물고문 등도 당했다. 박선오는 여성인 백완승의 무릎을 꿇린 채 수사관이 "네가 유관순이냐"고 조롱하며 신발을 벗어 얼굴 등을 사정 없이 패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다.
백완승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연행된 동료 몇 사람만 인정을 했고, 대선배인 조성우는 끝내 발설하지 않았다. 고대 학생운동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굳은 의리 때문이었다. 친구 최정순은 백완승이 아마도 이때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신체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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