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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때부터 미디어 노출 극도로 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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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년만에 예술의전당에서 에사페카 살로넨 지휘로 30여년 만에 뉴욕필과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사진 마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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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메르만의 예술은 철저한 통제에 기반한다. 청중·악기·공간·매체까지 외부 요소를 자신의 기준 아래 두려는 집념은 예술적 선택이라기보다 신념에 가깝다. 사소한 방해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는 사회적 통념으론 ‘기행’이지만 지메르만에게는 양보 마이너스통장 증액 할 수 없는 원칙이다. 이번 내한에서도 공연 전 과정을 촬영 금지로 제한했고, 주최 측은 스마트폰 진동음에도 예민했다. 해외에서 객석 소음, 녹음, 녹화로 연주를 중단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독일 루르 페스티벌에선 수차례 경고에도 스마트폰 촬영을 멈추지 않는 관객을 보고는 공연 도중 무대를 나갔다. 2010년 런던 공연에서 녹음 장치를 쓰는 관객을 공개 신용회복자대출 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03년 예술의전당 독주회에서는 천장의 음향 장비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직접 제거를 시도했다.

피아노 역시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공연장 비치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조율한 전용 피아노를 공수해 건반과 액션 메커니즘까지 분리·재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폴란드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전세보증금보호 어려서 만난 대부분의 피아노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자신이 조금 손 보기만 해도 완전히 다른 악기가 되는 희열을 경험했던 게 피아노를 직접 설치하는 이유다. 그는 저-중-고음역으로 나눠 대략 1시간 안에 조립을 완성한다.
지메르만에게는 피아노 조립이 일상적인 절차지만, 주최 측에는 물류비용부터 상당한 부담이다. 스위스에서 유럽 각지로, 유럽에서 영국으로 이동할 때마다 피아노 운반을 위한 통관 허가서를 일일이 준비해야 한다. 유럽에서도 ‘지메르만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수용하는 절차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JFK 공항 세관은 지메르만이 가져온 피아노 틀에 붙은 접착제를 위험물로 간주해 피아노를 파기했다. 지메르만은 새 피아노를 미국으로 반입하려 했지만 세관은 다시 피아노를 압수했고 그를 닷새간 억류했다.
평소 사생활을 철저히 가리는 성향이지만, 유독 일본에서는 경계심을 낮췄다. 1978년 첫 일본 공연 이후 현지 에이전시 재팬아츠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2003년부터는 도쿄에 거처를 마련하고 스위스 바젤 자택을 오가며 생활했다. 1981년 폴란드의 계엄령 선포 이후 조국을 떠나 1984년부터 스위스에 정착했으며, 현재는 폴란드와 스위스 국적을 이중보유하고 있다. 2015년 조성진의 도쿄 리사이틀에 깜짝 방문해 무대 뒤에서 격려했고, 2022년 일본예술원 세계문화상 시상식에는 부인과 딸과 함께 참석해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음악지에는 도쿄 지방의회 선거 결과에 대한 소회를 밝힐 정도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사생활을 존중해서 롯폰기를 즐긴다는 그가 서울도 사랑할까.
한국과 인연은 1989년 정경화와 함께 한 슈트라우스·레스피기 바이올린 소나타 녹음으로 시작됐다. 최근에는 마스트미디어와 협력하며 꾸준히 내한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관타나모 수용소 인권 문제를 규탄한 지메르만은 2009년 폴란드 내 미국 미사일 배치에 항의해 미국 공연을 전면 중단했다. 오랫동안 함께한 영국 매니지먼트 해리슨패럿과도 2021년 결별하면서 미주·유럽 무대에 공백이 생겼다. 마스트미디어는 이 틈을 공략해 2010년대 중반부터 내한을 연속적으로 성사시켰다. 국내 모 치킨 브랜드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팬데믹 기간에도 자가격리를 감수하며 방한해 치킨을 즐겼다고 한다.
그는 데뷔 당시부터 인터뷰를 극도로 꺼리고 공연이나 음반 홍보 자리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뉴욕 필하모닉 협연에서도 ‘수하물 파손’을 이유로 간담회에 불참했다. BBC 라디오 진행자 톰 서비스가 2010년 바젤 자택에서 어렵게 성사시킨 단독 인터뷰 이후, 그라모폰상 등 주요 음악상 수상 계기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일본 저널리스트와의 접촉을 제외하면 미디어와의 대면은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국내 언론과는 2017년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발매한 슈베르트 소나타 음반과 관련한 서면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아직 공식적인 만남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쇼팽 콩쿠르 역사에서 논란 없는 첫 우승자는 조성진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성진 “지메르만, 아버지처럼 조언해줘”









2016년 일본기획사 재팬아츠 신년회에서 지메르만과 조성진. [사진 인스타그램 krystianchopin]







지메르만은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등 당대 거장들과 무대를 나누며 스스로 구축한 독립적 생태계로 들어갔다. 단순히 정해진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연주자가 아니라,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 전 과정을 기획하는 설계자로 위치했다. 공연 당일 오전까지 독주회 곡목을 공개하지 않는 방식은 초기엔 관행을 거스른 일탈로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지메르만의 파격은 상식을 뛰어 넘는다. 유럽의 외진 시골 마을에선 이름을 속이고 연주하기도 했다. 새롭게 연구하는 곡을 청중 앞에 시험삼아 연주해보기도 하고, 어떨 땐 약속된 곡의 절반만 연주했다.

일흔을 앞둔 지금도 지메르만의 행보는 예측 불가다. 특히 디지털 녹음에 대한 불신은 평소 그의 예술관에서 드러나는 집요한 정밀성과 묘하게 어긋난다. BBC 인터뷰에서 그는 “디지털은 소리를 지나치게 정확히 포착해 음악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공연에선 관객의 기침조차 용납하지 않는 극도의 정숙을 요구한다. 음악은 주로 자동차 안에서 듣는다면서 “도로 소음이 디지털 음원의 세부를 덮어주면 오히려 흐름이 또렷이 들린다”고 설명하는데, 음 하나까지 치밀하게 조율하는 그의 미학과는 분명히 충돌하는 지점이다.
지메르만과 브렌델, 폴리니, 바렌보임의 차별점은, 연주자의 고립된 예술 세계가 시장의 논리를 초월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데 있다. 세계 곳곳에 예정된 공연을 별다른 설명 없이 취소하는 태도는 지메르만과 아르헤리치가 공유하는 독특한 습성이다. 아르헤리치는 2007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의 여름 일본 투어를 앞두고 “일본은 너무 덥다”는 이유로 전 일정을 철회했다. 지메르만도 노령에 접어들면서 건강 문제로 원정을 포기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지메르만의 DG 협업, 제한적 투어지 선택, 철저히 조율된 이미지 전략은 후대 쇼팽 콩쿠르 입상자들에게 ‘전설을 복제하는 틀’로 작동하고 있지만, 음악적 약점도 가볍지 않다. 다른 연주자와 상호작용보다는 자신의 해석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기질은 2000년대 중반 기돈 크레머 앙상블과의 협업에도 두드러졌다. 이탈리아와 일본 지방 공연을 사전 테스트 삼아 세계 주요 무대로 진입하려던 듀오 기획이 무산된 데는 해석적 균형에 익숙지 않은 지메르만의 책임도 작지 않다. 이후 지메르만과 크레머는 사실상 음악적 동반 관계를 끊었다. 자신이 주도한 체임버 오케스트라 프로젝트에서도 지휘자로서 섬세한 밸런스 감각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2024년 그라모폰 신년 인터뷰에서 지메르만은 “앞으로의 계획은 나도 잘 모르겠다”며 슬쩍 은퇴 가능성을 비쳤다. 브렌델이 만 77세에 공식 무대에서 은퇴한 것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그는 콩쿠르 심사 제안을 좀처럼 수락하지 않았다. 참가자가 ‘콘서트를 즐기는 일’이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음대에 소속된 적도 없고, 공개 마스터클래스도 열지 않아 직계 제자라 부를 인물도 없다. 조성진이 지메르만과 대면한 뒤 “계약과 콘서트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아버지처럼 조언해준다”고 말했는데, 몹시 특별한 경우였다.
지메르만은 폴란드 정치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경계하면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공개적 항의는 비교적 조심스러워 하는 편이다. 전통적 의미의 ‘거장 피아니스트’들이 하나둘 사라진 지금, 농담과 철학적 사유를 오가는 기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한정호 공연평론가·에투알클래식 대표. 런던 시티대 대학원 문화정책 매니지먼트 석사. 발레리나 박세은, 축구인 박지성 등 예술 체육계 명사의 에이전시와 문화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에투알클래식 대표를 맡고 있다. 월간 객석, 일본 오케스트라연맹에서 일했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다양성위원회 민간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