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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기자]
▲ 농장 임시주거시설 내부 간선급행버스 농장 기숙사 안쪽 모습. 열린 문 사이로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로 만든 숙소가 보인다. 네팔에서 온 A는 이와 비슷한 기숙사에서 9년 가까이 살았다.
ⓒ 용우
기다란 비닐하우스 무 파산면책제도 리가 줄지어 스쳐 간다. 오이, 실파, 포도 따위를 키우는 시설 농장들이다. 내가 탄 차는 김달성 목사님(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이 혼자 탄 차를 쫓아다녔다.
농장 기숙사들은 채소 시설 농장 귀퉁이나 도로 옆 어딘가에 있었다. 잿빛 혹은 새까만 차광막으로 꽁꽁 싸맨 비닐하우스가 대개 기숙사였다. 출입문이나 그 위에 작은 사업성공 환풍구 말고는 햇빛이나 바람이 안 통하겠다 싶었다. 어떤 기숙사는 문이 열려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흙바닥 위에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조립식 주택이 슬쩍 보였다.
현장 답사가 끝날 무렵, 목사님은 야외 화장실 터를 보여줬다. 기숙사였다가 이제는 창고로 쓰는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그 옆에 쓰러지기 직전인 화장실이 서 있다. 얇은 쇠 철도대학 파이프 틀에 함석판으로 지붕을 덮었다. 사방을 둘러친 부직포가 흐늘거려서 벽 구실을 못 하고 있었다. 부직포가 튼실했을 때도 소나기가 오면 빗물이 들이치고, 칼바람도 숭숭 드나들었을 것 같았다. 그 안에는 물탱크 만한 고무대야 위에 나무판이 올려져 있었다. 나무 팔레트 위에 널빤지를 대고, 가운데 조그만 구멍을 낸 나무판이었다. 고무대야 안에는 분뇨와 휴지 출산유급휴가 가 잔뜩 뒤엉켜 있었다.
그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그런 기숙사에서 사는 이들은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여전히 컨테이너 숙소, 비닐하우스 기숙사, 조립식 패널 주택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2018년 11월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 2022년 2월 경기도 파주 컨테이너 숙소 화재, 2022년 8월 경기도 화성 폭우·산사태 희생자 가운데 이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시원과 컨테이너 숙소에서 죽음을 맞았다. 심각한 기후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허술한 집들은 흉기로 변해 생명을 위협했다. 아래는 이주노동자들이 기후 위기 시대를 어떻게 건너고 있는지, 그 삶을 겪거나 목격한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다.
▲ 폐쇄된 농장 기숙사 옆 야외 화장실 기숙사였다가 창고로 쓰는 비닐하우스 뒤쪽에 '야외 화장실' 터가 남아 있다. 앞쪽에 쇠파이프, 함석판, 부직포로 만든 화장실이 쓰러질 듯 서 있다. 그 뒤로 간이 화장실 두 칸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다
ⓒ 용우
- 네팔에서 온 남성 이주 노동자 'A' 이야기
"저는 2014년 7월 5일에 네팔에서 한국에 왔어요. 처음 취업한 농장엔 채소 비닐하우스가 80개 있었어요. 그 한 귀퉁이에 기숙사가 있었는데요.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 판넬(패널)로 만든 집이었어요. 여름에 기숙사에서 선풍기를 틀고 좀 지나면 따뜻한 바람이 나왔어요. 한번은 비가 너무 와서 물이 기숙사 안에도 들어왔어요. 또 언제는 태풍에 기숙사가 다 무너졌어요.
비닐하우스에 벌레약(살충제)을 일주일에 한 번씩 아침에 뿌리고 저녁에 뿌렸어요. 풀약(제초제)은 봄에 한 번, 여름에 두 번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 8시까지 뿌렸어요. 방독 마스크 아니고 그냥 마스크 꼈어요. 더운 거는 참는데 추운 거는 못 참아요. 일할 때 손이 다 얼어서. 장갑 너무 두꺼운 거 하면 일 못해요! 얇은 거 하면 손이 시려요.
지금은 젖소 목장에서 일해요. 여기 사장님은 먼저는 한 달에 두 번 쉰다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쉬는 날을 안 줬어요. 여기는 기숙사가 컨테이너예요. 바로 옆에 소가 있어요. 냄새도 많이 나고 기숙사 너무 조그매요. 한 번은 영하로 18도, 20도 내려가서 3~4일 추웠어요. 그래서 소주 한 병 마시고 잤어요. 술 먹어서 눈이 아파요.
작년 여름에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코로나였어요. 내가 딴 사람들한테 안 말했어요. 일 못하면 돈 못 받으니까. 7월 25일부터 8월 15일 정도까지 대파밭에서 풀 뽑거나 밖에서만 따로 일했어요. 일하기는 힘들어도 그냥 억지로 억지로 했어요."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 이야기
"제가 도시빈민 선교, 노동 선교를 하다가 일반교회 목회도 했어요. 2011년에 작은 교회 맡아서 포천에 왔어요. 2018년부터 이주노동자 사역하면서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만들었어요.
폭염 경보 때 비닐하우스 농장 안에 온도를 재보면 40도가 넘죠. 그런데 채소 농장에서 쉬는 시간을 공식적으로 10분 이상 주는 데를 본 적이 없어요. 폭염 때는 강제 휴식을 정부 지침으로 의무화할 필요도 있다고 느꼈어요.
이주노동자들은 주거 환경이 기본적으로 환기 안 되죠, 햇빛 거의 안 들어오죠, 농장 숙소에 에어컨이 없는 데가 한 50%예요. 기숙사가 찜질방이에요. 여성 노동자는 열대야가 있을 때 방범 때문에 기숙사 방문을 열어놓고 잘 수도 없어서 더 힘듭니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잖아요. 1년에 농장이나 축산 노동자들 총 노동시간은 3000시간이 넘어요. 하루 세 끼를 대부분 다 스스로 만들어 먹어요. 먹는 것도 상당히 부실하지, 쇼핑 갈 시간도 내기 힘들어요.
E-9(비전문취업) 비자 노동자들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서 보험료 매달 꼬박꼬박 냅니다. 근데 막상 아프거나 병들었을 때 병원 가기 힘들어요. 병원 갈 시간을 주지 않아요. 의료 접근성이 너무 낮아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이 1년에 3000명 이상 죽어요.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극한 기후가 강화되면 사망자는 더 증가할 거예요."
-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 이야기
"제가 이주노동자들과 영상 제작 활동을 해보려고 2009년부터 '지구인의 정류장'이란 단체를 만들었어요. 요즘은 이주노동자 문제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일을 더 많이 해요.
작년 11월 말 폭설 때, 경기도에 폭설 피해 보상 신청한 사람이 1만 명 이상이었어요. 그중에 이주노동자가 딱 3명이었어요. 근데 실제로 폭설에 찌그러진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아니었겠죠. 그런 비닐하우스 숙소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었을 거예요. 폭설 때문에 '자기 여권이 다 날아갔다. 살림 다 버리고 몸만 나왔다'고 얘기하면서 찾아온 노동자들이 우리 사무실에는 있었어요. 근데 이 노동자들은 도에서 긴급 구호가 있었다는 걸 알고 신청할 겨를이 없어요.
사육 농가는 코로나가 아니라도 조류독감, 구제역이 생겨도 출입 통제를 했어요. 돼지의 안정을 위해서 이주노동자들은 감옥 생활을 했어요. 일상이 코호트 격리 상태였죠. 사장이나 한국인 직원들은 출퇴근하는데도요. 그러니까 코로나 때라고 더 감옥처럼 되지는 않았어요.
이주노동자들은 한 달에 딱 이틀 쉬는데, 사장이 '너 허락 없이 나갔다 왔어? 너 때문에 전염병 걸려' 하고 욕하면서 해고하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그러면 '오케이, 나 해고됐어!' 하고 좋아하는 노동자들이 있었어요. 가고 싶은 다른 사업장으로 바로 옮기는 건 아니라도 일단 그동안 겪었던 억압 상태에서 내가 탈출할 수는 있는 거예요."
▲ '지구인의 정류장' 남성 이주노동자 숙소 '지구인의 정류장' 사무실 한편에 남성 이주노동자 숙소가 있다. 일을 그만두거나 갈 데가 없는 남성 이주노동자들이 이곳을 쉼터로 쓰고 있다. 사무실 곳곳에 이주노동자들의 짐들이 있다. 김이찬 감독은 사무실이 난민촌처럼 되었다고 했다.
ⓒ 용우
-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수석 부위원장 '섹 알 마문' 이야기
"저는 1998년에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왔어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Migrants' Trade Union)' 수석 부위원장이고, 이주노동자 문화예술단체 '아시아 미디어 컬처 팩토리(Asia Media Culture Factory)' 활동가예요. 독립 영화도 여러 편 찍었어요.
한국에 와서 주로 마석가구단지에서 가구를 만들거나 인테리어 일을 많이 했어요. MDF 합판에서 나오는 가루가 되게 몸에 안 좋거든요. 본드로 톱밥을 붙인 거니까. 가끔 도장실에 가보면 거기도 먼지나 냄새가 정말 심했어요. 방독 마스크는 안 주죠! 노동자들 하지도 않아요. 공장에서 안전 교육을 누가 해요? 사장이 해야 되는데 사장이 안 좋은 물질 쓰고 있잖아요.
유독물질 나오는 공장에서 한 20~30년 일할 수 있잖아요. 젊을 때는 모르다가 나이 먹고 뇌가 너무 안 좋아지는 그런 경우들이 있어요. 한국 공장 다니다가 암에 걸렸는데, 일 그만두고 방글라데시에 가서 몇 개월 뒤에 죽거나.
예전에 경기도에서 이주노동자는 무조건 운동장에 모아놓고 코로나 검사 받게 했어요. 그 당시에 네 명 이상 모이면 안 된다고 하는 시절이었거든요. 똑같은 사회에서 살고 일하는데 한국 사람이니까 검사 안 받아도 되고 외국 사람이면 전부 다 검사를 받아야 되나요? 근데 코로나 백신은 다 맞아야 됐는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외국인 등록증이 없으니까 처음엔 못 맞기도 했어요. 모든 부분에서 혼란스러웠어요.
정부가 이주민에 대한 시선을 사실상 공포스럽게 만들었어요. 국내에 있는 이주민들이 외국에 갔다 오는 것도 아니고 외출도 더 못했는데, 이 사람들이 병균을 옮겼다고 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어떤 지자체들은 재난 지원금도 처음에 외국인은 배제했다가 나중에야 주기도 했어요."
▲ '섹 알 마문' 감독과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 지난 5월 12일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 공용 공간에서 섹 알 마문 감독과 만났다. 이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문화예술 창작을 비롯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 용우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 'B' 이야기
저는 스물일곱이던 2016년 4월에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왔어요. 우리 같은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일들은 네팔에서 온 'A'랑 비슷했어요. 새벽같이 일어나서 비닐하우스에서 보통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했어요. 점심시간은 30~40분 정도밖에 안 줬어요. 쉬는 날에도 사장님이 일을 시키면 일해야 했어요. 어떤 때는 사장님이 다른 농장에 일하러 보내요.한국에 취업하려면 돈 주고 배워서 한국어능력시험을 쳐야 해요. 시험에 붙어도 2년 안에 취업 안 되면 다시 시험 쳐야 해요. 그러니 취업이 되면 어떻게 일하는지, 숙소가 어떤지 알기도 어렵지만 알아도 가릴 형편이 아니에요.2020년 12월 20일, 그날은 제가 살던 포천시에 한파 경보가 내렸어요. 제가 살던 기숙사는 며칠 째 전기 차단기가 내려가서 난방이 안 됐어요. 동료들은 다른 기숙사에서 자고 오겠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저는 그냥 남기로 했어요.그날 밤에 저는 피를 토했어요. 다음날인 일요일 오후에 기숙사로 돌아온 동료들은 침실에서 제 주검을 발견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4년 10개월 일했고, 3주 뒤면 비자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2021년 1월 10일에 캄보디아행 비행기표도 미리 끊어 두었는데...제 이름은 누온 속헹(Nuon Sokkheng)이에요. 한국에서 하늘로 떠나갈 때 제 나이는 서른 한 살이었어요.
속헹이 불러온 나비효과
속헹의 부고를 듣고 김달성 목사와 김이찬 대표는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세상에 알렸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섹 알 마문 감독과 정소희 감독은 이미 2년 전에 방송에 냈던 독립영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를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했다. 국내외 언론이 '속헹 사망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2021년 1월 12일, 고용노동부는 '농·어업분야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개선' 업무처리 지침을 발표했다. 2021년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면 이주노동자 고용을 불허하겠다고 했다. 그 뒤, 사업주들이 숙소로 빌라를 얻거나 빈집을 개조해서 제공하는 일이 생겨났다. 일부 지자체들은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공동기숙사를 새로 지어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지자체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일부 사업주들은 더 나은 숙소를 제공한다며 기숙사비를 배로 올려 임대수익을 챙겼다. 어떤 사업주들은 계약서에는 '기숙사 미제공'에 체크하고, 실제로는 '불법 임시주거시설'을 여전히 기숙사로 제공했다. 그러면 기숙사비를 안 받기도 했지만, 공과금이나 관리비 명목으로 기숙사비만큼 임금에서 제하는 사업주들도 있었다.
빈틈 속에서 편법이 난무했다. 정부의 졸속 행정과 관리 소홀이 낳은 결과였다.
고용노동부는 개선안을 마련하면서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기숙사는 불허한 반면, '비닐하우스 밖 컨테이너' 기숙사는 허가했다. 비닐하우스 '밖에 있는 가설건축물'은 지자체에 건축허가와 신고필증만 받으면 기숙사로 제공하게 했다. 이주인권 활동가들은 비닐하우스가 있냐 없냐로 주거가 적절한지 판단하는 행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는 2017년부터 시행한 '외국인 근로자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지침(고용노동부)'은 그대로 놔두었다. 이 지침은 임시주거시설은 통상 임금의 8%, 상시주거시설은 통상 임금의 15%까지 기숙사비를 걷게 해주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임시주거시설인 비닐하우스 숙소에 살 때는 월세로 보통 20만 원(통상 임금의 8%+공과금, 관리비 등)을 냈다.
개선안 시행 후 원룸, 빌라, 아파트, 개조한 빈집 따위에서 살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월세로 거의 40만 원(통상 임금의 15%+α)을 내게 되었다. 한 집에 40만 원이 아니라 한 사람당 40만 원이었다. 빈집을 고쳐 직원 5명에게 기숙사로 제공하면 고용주가 월세를 2백만 원까지도 받게 된 셈이다. 폐가를 대충 고쳐서 외풍이 숭숭 드는 집이라도 그랬다.
- <깻잎 투쟁기(우춘희, 교양인, 2022년)> 30~40쪽 참고하여 재구성 -
또한 이주인권 전문가들은 현행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 노동권과 주거권 개선을 가로막는 벽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해진 기간 동안 지정된 사업체에서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계약서와 전혀 다른 노동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사업주의 승인 없이는 이직을 할 수 없는 현행 허가제 때문에 부당한 노동 조건에 내몰리고 있다."
-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 협박' 당해도 이직은 안된다?> 임동현. 2020.6.15. 시사주간 -
2022년,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정의로운 전환을 향하여: 기후위기와 주거에 대한 권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기후위기에 취약한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권을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은 한국 국적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 아닌 외국인과 난민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대상에서 배제해 왔다. 주거급여 수급 자격 역시 내국인 미성년 자녀 또는 배우자의 부모를 부양하는 사람으로 한정한다. 독일은 유럽연합 소속이 아닌 국가 출신 외국인 가구도 주거급여와 사회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스웨덴은 1년 이상 체류 자격을 보유한 외국인에게 주택수당 수급권을 인정하고 있다.
덧붙이는 이야기
지난 4월 12일, 토요일 저녁에 연천역 앞에서 A와 만났다. 그는 너무 덥거나 추울 때 힘들지 않았는지, 일이 버겁지 않았는지 물을 때마다 '힘든 줄 몰랐다. 그런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참고 해야 돼. 우리나라(네팔) 일 없어서 이렇게 일 해면 또 먹고 살고 그렇지 않으면 돈이 모자라요.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이런 생각은 안 났어요. '이렇게 해야 돼! 안 하면 할 수 없어. 어차피 해야 돼!' 그런 생각이었어요."
▲ A가 네팔에 짓고 있는 집 네팔 출신 노동자 A가 네팔에 짓고 있는 3층짜리 주택 사진. 그는 내게 핸드폰으로 이 사진을 자랑스레 보여줬다.
ⓒ A(익명, 네팔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A는 핸드폰으로 자신이 네팔에 짓고 있는 3층짜리 주택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본국에 1억 원 정도를 송금했다. 10년 동안 번 돈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A가 10년 넘게 번 돈을 한국 기업형 농장주들은 한 해에도 쉽게 벌었다. A는 네팔에 아내와 다섯 살 난 아들이 있었다. 네팔에서 1년 만에 벌 돈을 한국에서는 한 달에 벌 수 있었다. 일을 못 하는 상황에 비하면 열악한 숙소와 일터에서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는 일은 대수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A는 어릴 때 길을 내고 아파트를 짓는 '토목 기사(civil engineer)'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랬던 A가 이제는 남에게 세를 놓을 수 있는 큰 집을 짓고 있다. 비닐하우스와 조립식 패널,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살면서 모은 돈으로 말이다. A도 언젠가는 네팔에 돌아가리라. 거기서는 부디 멋진 집에서 아늑하게 살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용우: 공동체은행 '빈고' 조합원. 가난하고 힘없고 경계에 선 이들 편에서 글 쓰고 싶은 사람.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공저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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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 임시주거시설 내부 간선급행버스 농장 기숙사 안쪽 모습. 열린 문 사이로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로 만든 숙소가 보인다. 네팔에서 온 A는 이와 비슷한 기숙사에서 9년 가까이 살았다.
ⓒ 용우
기다란 비닐하우스 무 파산면책제도 리가 줄지어 스쳐 간다. 오이, 실파, 포도 따위를 키우는 시설 농장들이다. 내가 탄 차는 김달성 목사님(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이 혼자 탄 차를 쫓아다녔다.
농장 기숙사들은 채소 시설 농장 귀퉁이나 도로 옆 어딘가에 있었다. 잿빛 혹은 새까만 차광막으로 꽁꽁 싸맨 비닐하우스가 대개 기숙사였다. 출입문이나 그 위에 작은 사업성공 환풍구 말고는 햇빛이나 바람이 안 통하겠다 싶었다. 어떤 기숙사는 문이 열려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흙바닥 위에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조립식 주택이 슬쩍 보였다.
현장 답사가 끝날 무렵, 목사님은 야외 화장실 터를 보여줬다. 기숙사였다가 이제는 창고로 쓰는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그 옆에 쓰러지기 직전인 화장실이 서 있다. 얇은 쇠 철도대학 파이프 틀에 함석판으로 지붕을 덮었다. 사방을 둘러친 부직포가 흐늘거려서 벽 구실을 못 하고 있었다. 부직포가 튼실했을 때도 소나기가 오면 빗물이 들이치고, 칼바람도 숭숭 드나들었을 것 같았다. 그 안에는 물탱크 만한 고무대야 위에 나무판이 올려져 있었다. 나무 팔레트 위에 널빤지를 대고, 가운데 조그만 구멍을 낸 나무판이었다. 고무대야 안에는 분뇨와 휴지 출산유급휴가 가 잔뜩 뒤엉켜 있었다.
그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그런 기숙사에서 사는 이들은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여전히 컨테이너 숙소, 비닐하우스 기숙사, 조립식 패널 주택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2018년 11월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 2022년 2월 경기도 파주 컨테이너 숙소 화재, 2022년 8월 경기도 화성 폭우·산사태 희생자 가운데 이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시원과 컨테이너 숙소에서 죽음을 맞았다. 심각한 기후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허술한 집들은 흉기로 변해 생명을 위협했다. 아래는 이주노동자들이 기후 위기 시대를 어떻게 건너고 있는지, 그 삶을 겪거나 목격한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다.
▲ 폐쇄된 농장 기숙사 옆 야외 화장실 기숙사였다가 창고로 쓰는 비닐하우스 뒤쪽에 '야외 화장실' 터가 남아 있다. 앞쪽에 쇠파이프, 함석판, 부직포로 만든 화장실이 쓰러질 듯 서 있다. 그 뒤로 간이 화장실 두 칸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다
ⓒ 용우
- 네팔에서 온 남성 이주 노동자 'A' 이야기
"저는 2014년 7월 5일에 네팔에서 한국에 왔어요. 처음 취업한 농장엔 채소 비닐하우스가 80개 있었어요. 그 한 귀퉁이에 기숙사가 있었는데요.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 판넬(패널)로 만든 집이었어요. 여름에 기숙사에서 선풍기를 틀고 좀 지나면 따뜻한 바람이 나왔어요. 한번은 비가 너무 와서 물이 기숙사 안에도 들어왔어요. 또 언제는 태풍에 기숙사가 다 무너졌어요.
비닐하우스에 벌레약(살충제)을 일주일에 한 번씩 아침에 뿌리고 저녁에 뿌렸어요. 풀약(제초제)은 봄에 한 번, 여름에 두 번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 8시까지 뿌렸어요. 방독 마스크 아니고 그냥 마스크 꼈어요. 더운 거는 참는데 추운 거는 못 참아요. 일할 때 손이 다 얼어서. 장갑 너무 두꺼운 거 하면 일 못해요! 얇은 거 하면 손이 시려요.
지금은 젖소 목장에서 일해요. 여기 사장님은 먼저는 한 달에 두 번 쉰다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쉬는 날을 안 줬어요. 여기는 기숙사가 컨테이너예요. 바로 옆에 소가 있어요. 냄새도 많이 나고 기숙사 너무 조그매요. 한 번은 영하로 18도, 20도 내려가서 3~4일 추웠어요. 그래서 소주 한 병 마시고 잤어요. 술 먹어서 눈이 아파요.
작년 여름에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코로나였어요. 내가 딴 사람들한테 안 말했어요. 일 못하면 돈 못 받으니까. 7월 25일부터 8월 15일 정도까지 대파밭에서 풀 뽑거나 밖에서만 따로 일했어요. 일하기는 힘들어도 그냥 억지로 억지로 했어요."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 이야기
"제가 도시빈민 선교, 노동 선교를 하다가 일반교회 목회도 했어요. 2011년에 작은 교회 맡아서 포천에 왔어요. 2018년부터 이주노동자 사역하면서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만들었어요.
폭염 경보 때 비닐하우스 농장 안에 온도를 재보면 40도가 넘죠. 그런데 채소 농장에서 쉬는 시간을 공식적으로 10분 이상 주는 데를 본 적이 없어요. 폭염 때는 강제 휴식을 정부 지침으로 의무화할 필요도 있다고 느꼈어요.
이주노동자들은 주거 환경이 기본적으로 환기 안 되죠, 햇빛 거의 안 들어오죠, 농장 숙소에 에어컨이 없는 데가 한 50%예요. 기숙사가 찜질방이에요. 여성 노동자는 열대야가 있을 때 방범 때문에 기숙사 방문을 열어놓고 잘 수도 없어서 더 힘듭니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잖아요. 1년에 농장이나 축산 노동자들 총 노동시간은 3000시간이 넘어요. 하루 세 끼를 대부분 다 스스로 만들어 먹어요. 먹는 것도 상당히 부실하지, 쇼핑 갈 시간도 내기 힘들어요.
E-9(비전문취업) 비자 노동자들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서 보험료 매달 꼬박꼬박 냅니다. 근데 막상 아프거나 병들었을 때 병원 가기 힘들어요. 병원 갈 시간을 주지 않아요. 의료 접근성이 너무 낮아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이 1년에 3000명 이상 죽어요.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극한 기후가 강화되면 사망자는 더 증가할 거예요."
-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 이야기
"제가 이주노동자들과 영상 제작 활동을 해보려고 2009년부터 '지구인의 정류장'이란 단체를 만들었어요. 요즘은 이주노동자 문제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일을 더 많이 해요.
작년 11월 말 폭설 때, 경기도에 폭설 피해 보상 신청한 사람이 1만 명 이상이었어요. 그중에 이주노동자가 딱 3명이었어요. 근데 실제로 폭설에 찌그러진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아니었겠죠. 그런 비닐하우스 숙소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었을 거예요. 폭설 때문에 '자기 여권이 다 날아갔다. 살림 다 버리고 몸만 나왔다'고 얘기하면서 찾아온 노동자들이 우리 사무실에는 있었어요. 근데 이 노동자들은 도에서 긴급 구호가 있었다는 걸 알고 신청할 겨를이 없어요.
사육 농가는 코로나가 아니라도 조류독감, 구제역이 생겨도 출입 통제를 했어요. 돼지의 안정을 위해서 이주노동자들은 감옥 생활을 했어요. 일상이 코호트 격리 상태였죠. 사장이나 한국인 직원들은 출퇴근하는데도요. 그러니까 코로나 때라고 더 감옥처럼 되지는 않았어요.
이주노동자들은 한 달에 딱 이틀 쉬는데, 사장이 '너 허락 없이 나갔다 왔어? 너 때문에 전염병 걸려' 하고 욕하면서 해고하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그러면 '오케이, 나 해고됐어!' 하고 좋아하는 노동자들이 있었어요. 가고 싶은 다른 사업장으로 바로 옮기는 건 아니라도 일단 그동안 겪었던 억압 상태에서 내가 탈출할 수는 있는 거예요."
▲ '지구인의 정류장' 남성 이주노동자 숙소 '지구인의 정류장' 사무실 한편에 남성 이주노동자 숙소가 있다. 일을 그만두거나 갈 데가 없는 남성 이주노동자들이 이곳을 쉼터로 쓰고 있다. 사무실 곳곳에 이주노동자들의 짐들이 있다. 김이찬 감독은 사무실이 난민촌처럼 되었다고 했다.
ⓒ 용우
-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수석 부위원장 '섹 알 마문' 이야기
"저는 1998년에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왔어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Migrants' Trade Union)' 수석 부위원장이고, 이주노동자 문화예술단체 '아시아 미디어 컬처 팩토리(Asia Media Culture Factory)' 활동가예요. 독립 영화도 여러 편 찍었어요.
한국에 와서 주로 마석가구단지에서 가구를 만들거나 인테리어 일을 많이 했어요. MDF 합판에서 나오는 가루가 되게 몸에 안 좋거든요. 본드로 톱밥을 붙인 거니까. 가끔 도장실에 가보면 거기도 먼지나 냄새가 정말 심했어요. 방독 마스크는 안 주죠! 노동자들 하지도 않아요. 공장에서 안전 교육을 누가 해요? 사장이 해야 되는데 사장이 안 좋은 물질 쓰고 있잖아요.
유독물질 나오는 공장에서 한 20~30년 일할 수 있잖아요. 젊을 때는 모르다가 나이 먹고 뇌가 너무 안 좋아지는 그런 경우들이 있어요. 한국 공장 다니다가 암에 걸렸는데, 일 그만두고 방글라데시에 가서 몇 개월 뒤에 죽거나.
예전에 경기도에서 이주노동자는 무조건 운동장에 모아놓고 코로나 검사 받게 했어요. 그 당시에 네 명 이상 모이면 안 된다고 하는 시절이었거든요. 똑같은 사회에서 살고 일하는데 한국 사람이니까 검사 안 받아도 되고 외국 사람이면 전부 다 검사를 받아야 되나요? 근데 코로나 백신은 다 맞아야 됐는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외국인 등록증이 없으니까 처음엔 못 맞기도 했어요. 모든 부분에서 혼란스러웠어요.
정부가 이주민에 대한 시선을 사실상 공포스럽게 만들었어요. 국내에 있는 이주민들이 외국에 갔다 오는 것도 아니고 외출도 더 못했는데, 이 사람들이 병균을 옮겼다고 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어떤 지자체들은 재난 지원금도 처음에 외국인은 배제했다가 나중에야 주기도 했어요."
▲ '섹 알 마문' 감독과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 지난 5월 12일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 공용 공간에서 섹 알 마문 감독과 만났다. 이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문화예술 창작을 비롯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 용우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이주노동자 'B' 이야기
저는 스물일곱이던 2016년 4월에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왔어요. 우리 같은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일들은 네팔에서 온 'A'랑 비슷했어요. 새벽같이 일어나서 비닐하우스에서 보통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했어요. 점심시간은 30~40분 정도밖에 안 줬어요. 쉬는 날에도 사장님이 일을 시키면 일해야 했어요. 어떤 때는 사장님이 다른 농장에 일하러 보내요.한국에 취업하려면 돈 주고 배워서 한국어능력시험을 쳐야 해요. 시험에 붙어도 2년 안에 취업 안 되면 다시 시험 쳐야 해요. 그러니 취업이 되면 어떻게 일하는지, 숙소가 어떤지 알기도 어렵지만 알아도 가릴 형편이 아니에요.2020년 12월 20일, 그날은 제가 살던 포천시에 한파 경보가 내렸어요. 제가 살던 기숙사는 며칠 째 전기 차단기가 내려가서 난방이 안 됐어요. 동료들은 다른 기숙사에서 자고 오겠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저는 그냥 남기로 했어요.그날 밤에 저는 피를 토했어요. 다음날인 일요일 오후에 기숙사로 돌아온 동료들은 침실에서 제 주검을 발견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4년 10개월 일했고, 3주 뒤면 비자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2021년 1월 10일에 캄보디아행 비행기표도 미리 끊어 두었는데...제 이름은 누온 속헹(Nuon Sokkheng)이에요. 한국에서 하늘로 떠나갈 때 제 나이는 서른 한 살이었어요.
속헹이 불러온 나비효과
속헹의 부고를 듣고 김달성 목사와 김이찬 대표는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세상에 알렸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섹 알 마문 감독과 정소희 감독은 이미 2년 전에 방송에 냈던 독립영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를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했다. 국내외 언론이 '속헹 사망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2021년 1월 12일, 고용노동부는 '농·어업분야 외국인근로자 주거환경 개선' 업무처리 지침을 발표했다. 2021년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면 이주노동자 고용을 불허하겠다고 했다. 그 뒤, 사업주들이 숙소로 빌라를 얻거나 빈집을 개조해서 제공하는 일이 생겨났다. 일부 지자체들은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조례를 만들었다. 공동기숙사를 새로 지어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지자체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일부 사업주들은 더 나은 숙소를 제공한다며 기숙사비를 배로 올려 임대수익을 챙겼다. 어떤 사업주들은 계약서에는 '기숙사 미제공'에 체크하고, 실제로는 '불법 임시주거시설'을 여전히 기숙사로 제공했다. 그러면 기숙사비를 안 받기도 했지만, 공과금이나 관리비 명목으로 기숙사비만큼 임금에서 제하는 사업주들도 있었다.
빈틈 속에서 편법이 난무했다. 정부의 졸속 행정과 관리 소홀이 낳은 결과였다.
고용노동부는 개선안을 마련하면서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기숙사는 불허한 반면, '비닐하우스 밖 컨테이너' 기숙사는 허가했다. 비닐하우스 '밖에 있는 가설건축물'은 지자체에 건축허가와 신고필증만 받으면 기숙사로 제공하게 했다. 이주인권 활동가들은 비닐하우스가 있냐 없냐로 주거가 적절한지 판단하는 행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는 2017년부터 시행한 '외국인 근로자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지침(고용노동부)'은 그대로 놔두었다. 이 지침은 임시주거시설은 통상 임금의 8%, 상시주거시설은 통상 임금의 15%까지 기숙사비를 걷게 해주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임시주거시설인 비닐하우스 숙소에 살 때는 월세로 보통 20만 원(통상 임금의 8%+공과금, 관리비 등)을 냈다.
개선안 시행 후 원룸, 빌라, 아파트, 개조한 빈집 따위에서 살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월세로 거의 40만 원(통상 임금의 15%+α)을 내게 되었다. 한 집에 40만 원이 아니라 한 사람당 40만 원이었다. 빈집을 고쳐 직원 5명에게 기숙사로 제공하면 고용주가 월세를 2백만 원까지도 받게 된 셈이다. 폐가를 대충 고쳐서 외풍이 숭숭 드는 집이라도 그랬다.
- <깻잎 투쟁기(우춘희, 교양인, 2022년)> 30~40쪽 참고하여 재구성 -
또한 이주인권 전문가들은 현행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 노동권과 주거권 개선을 가로막는 벽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해진 기간 동안 지정된 사업체에서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계약서와 전혀 다른 노동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사업주의 승인 없이는 이직을 할 수 없는 현행 허가제 때문에 부당한 노동 조건에 내몰리고 있다."
-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 협박' 당해도 이직은 안된다?> 임동현. 2020.6.15. 시사주간 -
2022년,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정의로운 전환을 향하여: 기후위기와 주거에 대한 권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기후위기에 취약한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권을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은 한국 국적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이 아닌 외국인과 난민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대상에서 배제해 왔다. 주거급여 수급 자격 역시 내국인 미성년 자녀 또는 배우자의 부모를 부양하는 사람으로 한정한다. 독일은 유럽연합 소속이 아닌 국가 출신 외국인 가구도 주거급여와 사회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스웨덴은 1년 이상 체류 자격을 보유한 외국인에게 주택수당 수급권을 인정하고 있다.
덧붙이는 이야기
지난 4월 12일, 토요일 저녁에 연천역 앞에서 A와 만났다. 그는 너무 덥거나 추울 때 힘들지 않았는지, 일이 버겁지 않았는지 물을 때마다 '힘든 줄 몰랐다. 그런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참고 해야 돼. 우리나라(네팔) 일 없어서 이렇게 일 해면 또 먹고 살고 그렇지 않으면 돈이 모자라요.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이런 생각은 안 났어요. '이렇게 해야 돼! 안 하면 할 수 없어. 어차피 해야 돼!' 그런 생각이었어요."
▲ A가 네팔에 짓고 있는 집 네팔 출신 노동자 A가 네팔에 짓고 있는 3층짜리 주택 사진. 그는 내게 핸드폰으로 이 사진을 자랑스레 보여줬다.
ⓒ A(익명, 네팔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A는 핸드폰으로 자신이 네팔에 짓고 있는 3층짜리 주택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본국에 1억 원 정도를 송금했다. 10년 동안 번 돈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A가 10년 넘게 번 돈을 한국 기업형 농장주들은 한 해에도 쉽게 벌었다. A는 네팔에 아내와 다섯 살 난 아들이 있었다. 네팔에서 1년 만에 벌 돈을 한국에서는 한 달에 벌 수 있었다. 일을 못 하는 상황에 비하면 열악한 숙소와 일터에서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는 일은 대수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A는 어릴 때 길을 내고 아파트를 짓는 '토목 기사(civil engineer)'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랬던 A가 이제는 남에게 세를 놓을 수 있는 큰 집을 짓고 있다. 비닐하우스와 조립식 패널,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살면서 모은 돈으로 말이다. A도 언젠가는 네팔에 돌아가리라. 거기서는 부디 멋진 집에서 아늑하게 살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용우: 공동체은행 '빈고' 조합원. 가난하고 힘없고 경계에 선 이들 편에서 글 쓰고 싶은 사람.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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